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1차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1차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주 산업인 건설·조선의 대형 프로젝트에 대한 금융지원 과정에서 정책금융기관의 수익성 평가 절차가 앞으로 대폭 강화된다.

이번 조치가 저가 수주의 덫에 걸려 위기에 빠진 해외건설·조선업종의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10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주재로 열린 해외건설·조선업 부실방지를 위한 관계기관 간담회에서 수출입은행·산업은행·무역보험공사 등 정책금융기관들은 저가 수주로 인한 사업 부실화를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건설·조선업체가 수주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에 금융을 지원할 때 전문기관을 통한 수익성 평가를 하는 것이 대책의 골자다.

이를 위해 정책금융지원센터와 해양금융종합센터의 역할을 확대·개편하고 심사를 강화할 전담 조직을 구성하기로 했다.

◇ 저가 수주에 몸살 앓는 건설·조선업…칼 빼든 정부

정책금융기관들이 앞으로 금융을 제공하기에 앞서 수주의 질을 꼼꼼히 따지겠다고 나선 것은 최근의 대우조선해양 사태로 대변되는 조선업계의 부실수주 관행이 배경이 됐다.

대우조선이 올해 3분기까지 4조3천억원에 이르는 적자를 내고,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엄청난 동반 적자를 기록하는 등 국내 조선업계는 이전에 무리하게 수주했던 해양플랜트 때문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원가와 기술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제살깎아먹기식 저가 수주로 해양플랜트 사업을 따냈으나, 경험 부족으로 예상보다 원가가 많이 들어갔고 공정이 지연될수록 비용이 커져 국내 조선업계 전체가 동반부실화하는 결과가 됐다.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올해 국내 조선산업의 수주액이 지난해의 327억1천만 달러보다 약 27% 감소한 240억 달러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그만큼 조선업의 불황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뜻이다.

건설업계 역시 해외플랜트 부실이 실적 개선에 발목을 잡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직후 주택경기 침체가 장기화되자 시공능력평가 10위 이내의 대형 건설사들이 중동에서 경쟁적으로 무리하게 플랜트 공사를 수주한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저가 수주와 공사 규모 증가에 따른 운영 노하우 부족은 물론 발주 국가의 정책 변화 등에 선제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현장 곳곳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 2013년 한 해 동안 1조원이 넘는 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 3분기에도 1조5천여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최근 3년간 이 회사의 영업손실은 2조5천억원이 넘는다.

중동 플랜트 공사가 많은 GS건설도 2013년 한해 9천3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해 시장에 충격을 줬다.

수익성 위주의 사업을 펼쳐왔다는 대림산업도 2013년 4분기 3천196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업계의 우려를 낳았다.

해외건설산업은 국제유가 하락으로 신규 수주도 난항을 겪어 올 들어 해외 공사 수주액이 지난해의 71.7%에 그치는 등 난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저가수주가 한창이던 2011∼2012년부터 지적돼 온 사항이다.

정부는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관계부처와 정책금융기관 합동으로 대책을 논의해 왔다.

올 2분기에 3조원의 손실을 드러낸 대우조선 사태는 대책 마련을 재촉했다.

이날 최 부총리 주재로 열린 간담회는 그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건설·플랜트 쪽의 저가수주 문제에 따른 대책은 2013년부터 정책금융기관들 간에 논의됐다"며 "대우조선 문제가 터지고 부총리가 관심을 갖고 지적하기 시작하면서 조선 쪽도 함께 논의가 됐다"고 설명했다.

◇ 건설·조선업계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듯

정부는 저가 수주를 막기 위한 이번 대책은 해외건설업과 조선업의 부실이 정책금융기관의 부담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전심사를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해당업계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해외 수주의 질을 평가하는 심사가 강화되면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저가 수주는 사라지겠지만 수주 물량이 감소하는 것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호황기에는 건설·조선업계가 자체 심사를 거쳐 조금 무리하더라도 수주를 하고, 수출입은행은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보증 등 금융을 제공해 수수료를 받는 '공생'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황기인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인식이 확고히 자리잡게 됐고, 수주 내용에 대한 심사가 강화될 경우 관련업계가 '다운사이징'되는 효과가 자동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그런 점을 들어 정책금융기관 중심의 조선·건설업계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일각에선 정책금융기관의 심사 강화가 저가 수주를 막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될지를 놓고 회의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건설·조선업계의 수주 내용을 국책금융기관이 심사해 평가하는 것이 전문성 측면에서 의문을 낳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그간 국책금융기관이 채권단 자율협약 등을 통한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주에 대한 심사를 한 적은 있지만 정상기업의 수주 심사는 대부분 기업 자체적으로 이뤄졌다"며 이번 대책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이 수익성을 따지는 심사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성대 무역학과 김상조 교수는 "수익성에 대한 철저한 심사는 국책금융기관의 의무 중 하나로 볼 수 있다"며 "오히려 이제까지 철저하게 심사하지 않고 엄청난 돈을 빌려준 것이 문제의 원인이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이제 와서 이런 대책을 내놓는다는 것이 낯뜨거울 정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자칫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의 업무가 중복될 수도 있다"며 예상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하는 등 철저한 사전 준비작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서울·세종연합뉴스) 임형섭 고동욱 김동호 기자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