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기흥 반도체라인에서 한 직원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라인에서 한 직원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한국 반도체업계는 잘나간다.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지난 3분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70%에 달했다. ‘단군 이후 한국 산업이 이뤄낸 최대 점유율’이란 얘기도 듣는다. 두 회사의 영업이익률은 30%가 넘는다. 반도체 수출만 한국 수출의 10%에 이른다. 삼성전자는 1993년 세계 메모리 시장 1위에 오른 뒤 22년째 수성 중이다.

하지만 업계를 둘러싼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당장 한국이 장악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대한 중국과 미국의 도전이 거세다. 평택 반도체단지 송전선 설치 반대 등 내부에서도 잡음이 나고 있다.

○한국 반도체는 기록경신 중

올 3분기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42.3%의 점유율을 달성했다. SK하이닉스는 26%로 2위였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도 원조격인 도시바를 10%포인트 이상 제치며 38.3% 점유율로 1위였다. SK하이닉스는 15.1%를 점유했다.

상대적으로 처지던 시스템반도체에서도 최근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삼성전자는 애플 아이폰6S에 들어가는 ‘두뇌’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제조해주고 있으며 퀄컴 시스코 등도 파운드리 고객으로 유치했다. 미래 자율주행차 등의 중심이 될 이미지센서에서도 일본 소니를 바짝 뒤쫓는 2위다. 최첨단 3차원(3D) 낸드는 업계에서 삼성전자만이 2년째 양산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대체하고 있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시장에서 삼성은 50% 이상의 점유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같은 기술력을 앞세워 지난 8월까지 한국 업체들이 수출한 반도체는 약 470억달러어치에 달한다. 품목별로 보면 2위 자동차(337억달러)를 30% 이상 앞선 압도적 1위다. 1990년 첫 수출 1위 품목이 된 뒤 25년 연속 1위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29일 제8회 ‘반도체의 날’을 맞은 한국 반도체업계의 화려한 기록이다.

○이면에는 위기감 가득

하지만 업계의 불안감은 크다. 직접적인 요인은 중국이다. 중국은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빼앗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래픽=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그래픽=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중국 국영기업 칭화유니그룹은 이달 자회사 유니스플렌더가 대주주인 웨스턴디지털을 통해 미국의 플래시메모리 회사인 샌디스크를 인수했다. 샌디스크는 일본 도시바와 합작으로 낸드 3개 라인을 운영 중이다. 인수엔 190억달러를 쏟아부었다. 업계에선 칭화유니그룹의 최종 목표가 낸드 업계 2위 도시바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칭화유니는 세계 4위 D램 업체인 대만 난야의 찰스 가오 최고경영자(CEO)를 최근 영입하기도 했다. 업계 전문가는 “중국이 10년 안에 메모리 시장에서 ‘의미있는 3등’까지 올라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은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55% 이상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 중 4.8%만을 자국 기업이 생산한다. 이 때문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직접 나서 ‘2030년까지 반도체 수요의 40%를 국산화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뛰고 있다.

반도체업계 최강 인텔도 중국과 손잡고 30년 만에 다시 메모리업계에 뛰어들었다. 지난 8월 ‘3D크로스포인트’라는 새로운 개념의 메모리반도체를 개발한 데 이어 최대 55억달러를 투자해 이 메모리를 생산할 공장을 중국에 짓기로 했다. 중국 정부는 토지 무상대여, 법인세 면제 등 대대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황철성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재료공학부 교수)은 “3D크로스포인트 같은 뉴메모리 기술을 발전시키면 작은 상자만한 크기의 슈퍼컴퓨터를 개발하는 것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며 “인텔은 미래를 내다보고 첫발을 뗀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에서 발목잡히는 반도체업계

경쟁국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지만 한국 반도체업계는 툭하면 국내에서 발목을 잡히고 있다. 반도체 직업병 문제만 해도 그렇다. 백혈병 등이 발병한 삼성전자 전 직원과 가족들은 시민단체 지원을 받아 9년째 시위 중이다. 삼성전자는 1000억원을 출연해 관련자와 가족에게 보상금을 주고 있지만 시위는 멈추지 않고 있다. 가족 외에 시민단체까지 가세한 상태다. 삼성 관계자는 “대법원에서 공장 근무와 상관없는 질병에 걸렸다고 판결받은 사람에게도 보상금을 주려 하고 있다”며 “이제껏 안전과 관련해 수많은 검증 작업을 거쳤는데도 일부에서 반도체 공장을 좋지 않게 몰아붙이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환경 문제도 발목을 잡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이천 공장 증설을 위한 첫 삽을 뜨기까지 무려 8년을 뛰어야 했다. 15조원을 투자하는 대형 사업인데도 환경부 등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서다. 2013년 불산 사태가 터진 뒤 삼성전자는 매년 수백억원을 쓰고 있다. 5월 평택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 시작한 뒤에는 송전선 설치 반대 시위로 어려움을 겪었고, 일부 평택 건축관련 업체가 “일감을 몰아달라”며 공사장 문을 막는 사태도 벌어졌다.

정부의 지원도 사실상 끊겼다. 지원하려고 해도 당장 야당에서 “삼성 같은 대기업을 지원하는 것이냐”는 비난이 나온다.

업계도 D램과 낸드플래시 외에 이렇다 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 인텔이 내놓은 뉴메모리의 경우 한국은 10년 전부터 개발했지만 이제까지 제품을 내놓지 못했다.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지금의 업계 상황은 한국 업체들이 밤을 새우고 더 열심히 한다고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정부와 학교,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차원의 혁신을 이뤄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