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 줄이고도…세금 더 걷은 국세청
올 들어 경기 부진이 지속되고 있지만 정부의 세수(稅收)는 지난해보다 크게 늘고 있다. 세월호 사태와 글로벌 경기 침체로 고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인과 개인사업자들이 작년 경영 실적을 바탕으로 낸 올해 법인세와 소득세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불경기에도 세금이 더 걷힌 것은 소득세 인상 등 세법 개정 효과와 함께 국세청의 세금 징수 방식 개편 등 세정개혁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국세청에 따르면 올 들어 7월 말까지 세수는 129조931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19조2068억원)보다 10조7243억원(9.0%) 늘었다. 부가가치세를 제외한 모든 세목에서 세수가 늘어나는 등 예상치 못한 ‘깜짝 세수 증가’다. 2012년 2조8000억원의 세수 결손에 이어 2013년(-8조5000억원) 2014년(-11조원) 등 3년 연속 세금이 예산보다 덜 걷혔지만 올해는 세수 부족 사태를 피할 수 있을 전망이다.

‘세수 미스터리’라고도 불릴 만한 올해 세수 증가의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소득세 최고 세율(38%) 과표구간 조정, 비과세 감면 축소 등 세법 개정 효과를 우선 꼽는다.

세무업계에선 국세청이 무차별적인 세무조사를 줄이는 대신 세금 신고 사전 안내와 성실납세자 지원을 강화하고, 일선 세무서의 징수체계를 합리화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세무조사 줄이고도…세금 더 걷은 국세청
임환수 국세청장은 올 1월 부가가치세 신고·납부 안내를 하면서 사전 성실신고 안내를 대폭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부가세에 그치지 않고 사전 신고 안내 강화는 이후 법인세, 소득세 등으로 확대됐다. 대신 세무조사와 신고 내역에 대한 사후검증은 대폭 줄인다고 공표했다. 즉 ‘국세청이 이런 정보를 갖고 있으니 신고를 제대로 해야 세무조사를 피할 수 있다’는 식으로 사전 안내를 해 성실납세를 유도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세무조사 확대 부작용 반성

국세청의 이런 세정 변화는 박근혜 정부 초기에 지하경제 양성화를 목표로 했던 세무조사·사후검증 확대의 부작용 때문이란 분석이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첫해인 2013년 법인·사업자 세무조사를 전년(4549건)보다 12.7% 늘린 5128건으로 확대했다. 2013년 소득세 사후검증 건수는 전년도에 비해 84.1%, 법인세 사후검증 건수는 68.1%나 늘렸다.

국세청의 계속되는 검증과 세무조사에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할 수 없다는 기업인들의 아우성이 빗발쳤다. 기업들의 불만이 쌓이면 경제가 위축되고, 그렇게 되면 결국 세수도 줄어들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나왔다.

임 청장은 취임 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무조사 및 사후검증 축소를 세정 방침으로 내세웠다. 지난해 세무조사 건수는 1만7033건으로 전년도에 비해 1000건이나 줄였다. 올해는 1만7000건을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부가세, 법인세, 소득세 등 세목별 사후검증 건수 역시 크게 줄이고 있다. 2013년 5만9426건에 달했던 부가세 사후검증 건수는 지난해 4만4600건으로 줄였고, 올해는 70% 감소한 1만3400건으로 더 축소할 예정이다.

빅데이터 활용한 사전안내

국세청은 대신 사전 성실신고 안내를 강화했다. ‘성실신고 안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사실은 탈세 가능성이 높은 이들에게 사전 경고를 하는 것이다. 즉 ‘국세청이 당신의 탈세 시도 가능성을 알고 있으니 알아서 제대로 신고하지 않으면 세무조사에 들어간다’는 무언의 압박이다.

안내 내용도 구체적으로 바꿨다. 개별 기업이나 사업자별로 어떤 항목은 공제받지 못할 것 같으니 감안해서 신고하라든가, 작년 신고한 항목 중 비용 부문이 과다신고된 것 같으니 올해 신고 때 참고하라는 식이다. 사전안내 대상도 광범위하다. 국세청은 종합소득세의 경우 50만명, 부가가치세는 사업자 67만명에게 탈루유형 및 사후검증 항목에 대해 상세히 안내했다. 이를 위해 과거 지방국세청 세원분석국을 성실납세지원국으로 개편하고 일선 세무서 부가세과와 소득세과를 합쳐 개인납세과로 바꿨다. 이 와중에 일이 늘어난 세무서 직원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국세청이 정교한 사전안내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동안 구축한 세금신고 빅데이터 덕분이다. 국세청은 과거에도 2011년까지 법인세 등에 대해 사전 안내를 시행했으나 사업자들의 반발만 불러일으킬 뿐 뚜렷한 세수증대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들의 매출 등 실적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없는 상태에서 추정에 의한 신고안내를 내보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011년 전자세금계산서가 도입된 이후 사업자들의 매출에 대한 상세한 통계 집계가 가능해졌다. 이후 지난해까지 4년간의 신고실적이 축적돼 빅데이터가 되면서 업종별 기업별로 정확한 세금 안내가 가능해졌다.

조사·검증 강도는 강화

일단 기업들은 무차별적인 세무조사나 사후검증이 줄어든 것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하지만 국세청이 사전에 상세한 신고 관련 정보를 미리 보내오고, 신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세금신고에 대한 부담은 더 커진 게 사실이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아주 구체적으로 탈세 가능성이 높은 항목을 지적해서 안내문이 오기 때문에 긴장감은 더욱 높아졌다”고 전했다.

국세청은 앞으로도 사전 안내를 늘리고 조사 건수는 줄이는 대신 세무조사 강도는 더욱 높이기로 했다. 임 청장은 “향후 성실납세를 하는 납세자에겐 최적의 납세 정보를 알려주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더욱 엄정하게 세무조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