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보증 기업 3741개…10년 넘게 신용보증기금 보증대출로 연명
인천에서 철강재 제조·가공업을 하는 B공업은 연매출 100억원대 중소기업이다. 중국산 철강이 넘쳐나면서 수년째 영업이익이 감소하는데 부채비율은 치솟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부채비율은 250%에 달했다.

B공업은 은행권에서 운전자금 명목으로 빌린 20억여원으로 연명해나가고 있다. 5~10년 단위로 거래 은행을 갈아타면서다. 신용등급이 좋지 않은 B공업이 이렇게 은행권 자금을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건 26년 전 신용보증기금에서 받은 보증 덕분이다. B공업은 보증 기간이 끝날 때마다 연장하면서 은행권 대출을 이용하고 있다.

이렇게 10년 이상 신보에서 장기 보증을 받고 있는 중소기업이 3700여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금융기관이 경쟁력이 없는 상당수 ‘좀비기업’의 구조조정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책자금이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을 갖춘 신생 중소·벤처기업이 아니라 경영이 부실한 한계기업으로 유입되면서 산업생태계를 교란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의동 새누리당 의원실로부터 6일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신보에서 10년 이상 장기 보증을 받고 있는 기업은 올 8월 말 기준 3741개로 조사됐다. 전체 보증금액만 2조4000억원에 달한다. 20년 이상 보증을 받고 있는 기업이 600개, 30년 이상 된 기업도 6개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황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철강, 조선, 해운관련 중소 제조기업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신보의 보증잔액은 최근 10년간 43% 늘었다. 여기에는 매년 1조원 이상씩 늘어난 보증 연장 금액도 한몫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보는 매년 성과평가에 목표 보증에 대한 소진율을 포함시키기도 했다”며 “신보 보증을 활용해 은행을 갈아타면서 장기간 대출을 이용하는 한계 중소기업이 상당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과 중국의 경제 둔화 등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이 같은 ‘보증 좀비기업’들이 경제를 뒤흔들 시한폭탄으로 바뀔 수 있는 만큼 보증체계 등 정책금융을 재편할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10년 이상 장기 보증 이용 기업이 모두 좀비기업은 아니지만 경쟁력 없이 보증을 통한 은행권 대출에 의존하고 있는 한계기업들은 구조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도 “장기 보증 기업들이 결국은 신생 벤처기업에 지원돼야 할 보증 여력을 없애는 셈”이라며 “한국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기업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도 이 같은 지적을 반영해 한계기업에 대한 반복적인 자금 지원을 최소화하고 성장성 있는 신생 벤처기업에 돈이 흘러갈 수 있도록 정책금융제도를 바꿀 방침이다. 신보가 보증 규모를 크게 늘려 은행권을 통해 시중에 막대한 자금을 공급했는데도 경제 활력이 살아나지 않는 데는 보증 좀비기업이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융당국은 보증 심사를 강화해 장기 보증 이용 기업에 대한 보증 지원을 단계적으로 감축할 방침이다. 또 현행 개별 기업에 대한 보증 방식을 바꿀 계획이다. 신보가 개별 은행에 대상 요건과 대출 총량을 지정해주고, 은행은 한도 내에서 자율적으로 기업을 선정해 대출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신보의 보증 규모는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축소할 예정이다. 다음달 금융위원회가 발표할 정책금융 역할 강화방안에도 이 같은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연태훈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해야할 중소기업들이 공적 지원을 받으며 연명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정책금융 지원 대상 조건과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정/김일규 기자 kej@hankyung.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