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자금압박에 시달리던 지난해 중반 대형 사모펀드(PEF)와 국내 대기업 한 곳이 잇따라 회사를 찾았다. 한두 개 사업부 인수를 제안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특정 사업부를 지목했다. 현대중공업이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국내 대기업과 PEF의 ‘빅딜’은 협상테이블조차 꾸리지 못했다.
[벼랑 끝 한국기업] 비핵심 부문 떼내려니 '세금폭탄'…2~3년 소송에 사업재편 '물거품'
○기업 분할에 세금폭탄

현대중공업이 제안을 거절한 표면적 이유는 적자사업부를 팔아봐야 제값을 못 받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무자들의 고민은 따로 있었다. 조선 해양 플랜트 엔진기계 전기전자시스템 건설장비 그린에너지부문 등 7개 사업부 가운데 한두 개 사업부를 떼내는 기업분할을 하기엔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한 데다 세금 부담도 클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이 사업을 분할하려면 인수기업에 주식을 일정 부분 넘기거나 영업 또는 자산을 양도해야 한다. 이 가운데 영업·자산을 양도할 경우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쳐야 하고 반대하는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줘야 한다. 해당 기업으로서는 적잖은 부담이다. 이 때문에 많은 기업은 주식양도 방식의 기업분할을 우선 검토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선 주식양도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기업분할의 성패는 일정 요건을 갖췄을 때 세제혜택을 주는, 적격분할을 인정받느냐에 달려 있다. 문제는 적격분할 적용 기준이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 구조조정에 밝은 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과세당국이 종전에 적격분할로 인정해주던 상당수 기업분할에 적극 과세하면서 기업들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각각 4700억원과 2710억원의 세금을 부과받고 국세청 및 지방자치단체와 소송전을 벌인 SK에너지와 OCI가 대표적이다.

양사 모두 소송에서 이기긴 했지만 피해는 컸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2~3년 동안 준비해 추진한 사업재편 작업이 2~3년씩 걸리는 소송으로 ‘올스톱’되는 게 해당 기업엔 더 큰 고통”이라고 말했다.

○일본 ‘원샷법’ 살펴봐야

이런 어려움을 덜기 위해 국회는 지난 7월 기업분할 절차 등을 완화한 일명 ‘원샷법(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을 마련해 상정했다. 하지만 적용 대상이 구조조정 기업(과잉공급 업종)으로 한정돼 있고, 규제완화 폭 또한 형식적 절차를 간소화한 수준이어서 사전에 자발적인 사업재편을 추진하는 기업엔 무용지물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원샷법의 벤치마킹 대상인 일본 산업경쟁력강화법이 부실기업뿐만 아니라 정상기업에도 폭넓은 세제 및 규제완화 혜택을 주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 다른 로펌 변호사는 “일본의 산업경쟁력강화법이 규제와 세금 부담으로 불가능했던 사업재편을 가능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춘 데 비해 한국의 원샷법은 사업재편에 걸리는 시간을 줄여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기업합병 인프라도 취약

계열사를 분리하기도 힘들지만 합치기도 어렵다. 합병이나 영업양수도에 반대하는 소액주주의 주식을 되사주도록 한 주식매수청구권 때문이다. 지배구조 재편에 조(兆)단위 자금이 들기도 한다. 2007년 LG그룹이 통신계열사를 합병하는 데 1조원, 2008년 KB금융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데는 2조4200억원이 들었다.

주식매수청구권은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하지만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고도 장내에서 얼마든지 주식을 팔 수 있는 상장법인에 굳이 이런 제도를 강요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 미국은 38개주(州)가 상장법인에 대해 주식매수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김상곤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기업이 구조조정에 나서는 시기는 대체로 주가가 하락하는 때여서 행사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주가가 떨어지면 합병에 찬성하는 주주들도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어 결과적으로 사업재편이 무산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2012년 롯데케미칼-KP케미칼 합병, 2014년 삼성엔지니어링-삼성중공업 합병이 무산된 배경이다.

종류주총도 기업이 자발적인 구조조정에 엄두를 못 내도록 하는 제도로 꼽힌다. 종류주총이란 우선주 보통주 상환우선주 등 여러 종류의 주식을 발행한 기업이 기업분할 등 사업을 재편할 때 보통주뿐 아니라 우선주 주주, 상환우선주 주주 등 주식별로 주주총회를 따로 열어 모두 승인받아야 하는 제도다.

하지만 보통주만 보유하는 게 일반적인 대주주에는 족쇄로 작용하는 사례가 많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 등은 기업이 보통주 의결권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편으로 활용돼왔다”며 “대주주가 지분을 갖고 있지 않은 종류주식 주총에서 이겨야 안건이 통과되도록 한 제도는 사실상 사업재편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푸념했다.

■ 적격분할

기업이 전략적인 목적으로 사업조직을 분할할 때 과세를 늦춰주는 제도. 하지만 법조문이 ‘분리하여 사업이 가능한 사업부문을 분할하는 경우’라는 식으로 애매해 과세당국과 기업의 갈등이 빈발하고 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