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히타치, 사상 최대 순익 내고도 '알짜' HDD 자회사 매각
2011년 3월 일본 히타치제작소가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사업 자회사인 미국 히타치글로벌스토리지테크놀로지(히타치GST) 매각을 전격 발표하자 일본 재계는 크게 술렁였다. 당시 히타치는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시점이었던 데다 히타치GST는 나카니시 히로아키 사장(현 회장)이 직접 공을 들여 키운 회사였기 때문이다. 2010년 영업이익도 6억4500만달러에 달했다. 43억달러의 매각대금은 히타치가 주력 사업으로 설정한 전력, 철도 등 사회 인프라 사업 확장에 쓰이면서 히타치의 대변신을 이끌었다.

히타치는 일본 제조업계에서 ‘개혁의 대명사’로 통한다. 히타치는 2003년 반도체 사업을 분리한 뒤 TV, 디스플레이, PC 사업을 줄줄이 정리했다. 이때 손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2008회계연도에는 일본 제조업체 역사상 최대 규모인 7800억엔(당시 환율 기준 약 10조2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히타치의 부활을 주도한 가와무라 다카시 히타치 전 회장은 “좀비 사업을 사내에 남겨두면 다른 사업의 추진력까지 갉아먹어 기업이 통째로 좀비 사업집단으로 변해버린다”며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하지만 통상 수년간 적자를 내고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히타치GST 매각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히타치는 이후 한 달이 멀다 하고 사업재편에 나서 20여건에 달하는 인수합병(M&A)과 영업 양도, 합작사 설립 등을 했다. 과감한 변신은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3~2014회계연도 2년 연속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낸 히타치는 2015회계연도에도 사상 최대 규모인 6600억엔의 영업이익을 예상하고 있다.

일본 반도체업계도 선제적 구조조정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히타치제작소와 미쓰비시전기는 2003년 시스템 반도체부문을 분사해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를 설립했다. 인텔 퀄컴 등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2010년에는 여기에 NEC 반도체부문을 합쳤다. 3개사는 이와 별개로 D램사업부를 통합해 엘피다를 설립한 뒤 2013년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매각했다. 반도체 사업부를 떼어낸 이들 3개사는 이제 일본 전자업계에서 이른바 ‘잘나가는 3인방’으로 꼽힌다. 미쓰비시전기는 2014회계연도에 매출, 영업이익, 순이익 모두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NEC도 올해 650억엔으로, 11년 만에 최대 이익 달성을 내다보고 있다.

반면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게을리한 기업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샤프는 지난해에만 2223억엔의 순손실을 냈다. 이미 가격 경쟁력을 잃은 액정표시장치(LCD)를 고집한 탓이었다. 또 가전과 PC부문 부실에 발목이 잡힌 도시바는 회계부정으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도시바는 경쟁사인 히타치의 선전에 자극받은 경영진이 2008회계연도부터 2014년 3분기 말까지 2248억엔의 이익을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