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부진·시장불안 대응책 논의 주목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28일 회동은 두 기관 간 미묘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경제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관심을 끈다.

내수·수출 부진으로 디플레 우려가 나올 만큼 국내 경기가 어려운 데다 중국의 경기 경착륙 우려와 미국의 금리 인상 예고로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이어서 두 수장이 어떤 논의로 해법을 찾을지 주목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그동안 주요 20개국(G20) 회의나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요 국제행사에서 나란히 참석하곤 하기 때문에 평소 얼굴조차 마주치지 않는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주요 간부들을 대동하고 식사 모임을 함께한 것은 작년 7월 21일 최 부총리 취임 직후 열렸던 상견례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한은은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모임의 성격에 대해 "양 기관 간부들 간의 친목을 다지기 위해 마련된 자리"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양 기관 간 소통을 강화해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혀 이번 자리가 단지 친목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진 최근과 같은 상황에서 통화·재정 당국이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날 모임은 기획재정부의 제안으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 입장에서는 썩 내키지만은 않은 자리일 수도 있었던 셈이다.

이런 분위기는 취재진의 취재가 허용된 첫 몇 분간의 대화에서도 드러났다.

참석자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최 부총리가 "오늘은 총재님이 리드를…(해달라)"고 말했지만 이 총재는 굳게 입을 다물었고, 이어 최 부총리는 "오늘 밥값은 누가 내나? 재정 상황이 나은지 통화 사정이 나은지…"라고 농담을 던져 분위기를 풀었다.

취재진이 경제현안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이 총재에 발언을 구하자 "기자들 나가면 하겠다"고 해 극도로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은 총재가 기재부 장관과의 만남을 편치만은 않아 한 것은 전통적으로 갈등 구도를 보여왔던 두 기관의 관계에 기인한다.

이 총재가 언급한 강남의 한정식집 회동을 할 때만 해도 한은과 기재부는 통화정책과 환율정책을 두고 사사건건 갈등을 빚어 둘 사이가 편치 않은 관계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8년 7월 당시 강만수 기재부 장관과 이성태 한은 총재는 강남의 한 한정식집에서 만나 일종의 단합대회를 했다.

이주열 총재는 당시 한은 부총재보였다.

강 장관은 당시 "나는 '한은 프렌들리'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며 화합을 과시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두 기관은 이후에도 정책적 충돌을 빚으며 사이가 좁혀지지 않았다.

2013년에는 현오석 전 부총리가 대규모 추경예산을 편성하고 한은에 금리 인하를 압박했지만 김중수 당시 총재는 이를 외면하기도 했다.

그 해 6월 두 수장이 명동의 곰탕집에서 만나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지만 두 기관의 갈등이 좁혀지지는 않았다.

최근에는 두 기관이 정책적으로 맞부딪히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한은이 기재부와의 만남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두 수장이 만난 이후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전례들이 있어 두 수장의 회동을 '금리조정 신호'로 해석하는 시장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작년 9월 호주 케언즈에서 열린 G20 회의 때 두 수장이 현지에서 '와인 회동'을 한 뒤 최 부총리가 "금리의 '금'자 얘기도 안 했지만 '척하면 척'이다"라고 말한 것을 두고 한은의 독립성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실제 두 사람이 만난 작년 7월과 9월 직후인 8월과 10월 한은은 기준금리를 잇달아 인하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만남에서는 기준금리 인하가 이슈가 아니기 때문에 최 부총리가 이 총재에게 경기부양을 위한 협조를 직접적으로 요청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기준금리가 이미 사상 최저 수준인 연 1.5%로 떨어진 데다 미국의 금리 인상 문제와 가계부채 급증에 따른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이날 회동에서는 최근 대내외 경제상황과 관련한 두 수장의 폭넓은 의견 교환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금리 인하와 중국의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일부 취약한 신흥국을 중심으로 금융불안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이런 불확실한 경제 상황을 맞아 두 수장이 경제 상황 인식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진 것은 불안해하는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상징적인 제스처로 해석될 수도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한은과 기재부는 전통적으로 불가근불가원의 관계였다"며 "금융시장이 불안해진 상황에서는 두 기관이 소통을 강화하고 원활한 공조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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