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경기 둔화가 27일 위기의 신흥국들을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최근 위안화 전격 절하와 주식 폭락 등이 촉발한 중국발 쇼크로 위기감이 더욱 고조된 나라는 10개국에 이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브라질,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자원 수출국 경제는 원자재 가격 추락으로 휘청거렸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3국과 터키는 통화 가치 급락에 신음하고 있다.

위기의 10개국은 올해 들어 통화 가치 급락과 주가 추락, 부도 위험 및 채권 금리 급등을 고려할 때 불안감이 특히 큰 곳이다.

◇ 저유가 등 원자재가 추락에 멍드는 자원부국
최대 자원 수입국인 중국의 경기 둔화로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은 원자재 가격 추락을 더욱 부추겼다.

'중국발 쇼크'로 국제 유가는 6년 반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유가를 포함해 22가지 원자재 바스켓으로 구성된 블룸버그 원자재 지수는 1999년 8월 이후 16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대표적인 산유국인 러시아와 브라질, 베네수엘라는 저유가에 몸살을 앓고 있다.

러시아는 저유가에 더해 지난해 말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국의 제재로 더욱 흔들렸다.

브라질에서는 수입 물가가 크게 뛰면서 대통령 탄핵 얘기가 나올 정도로 국민의 불만이 높아졌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올해 기준금리를 4차례에 걸쳐 인상했지만 여전히 소비자 물가는 잡히지 않고 있다.

원유 수출 부진에 베네수엘라에서는 외화보유액이 갈수록 떨어져 2003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200억 달러를 밑돌았다.

저유가 등으로 물가가 폭등하자 베네수엘라에서는 국민이 시장에 100 볼리바르 짜리 돈뭉치를 들고 가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에 베네수엘라는 액면가가 더 높은 화폐 발행을 검토하고 나섰다.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진 우크라이나는 원자재 가격 폭락이라는 악재까지 만나 위기상황에 빠졌다.

우크라이나의 통화 가치는 올해 들어 43.3% 폭락했고 브라질(-36.1%), 러시아(-13.6%)의 통화 가치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지난해 12월 연간 인플레이션이 68%에 도달한 이후로 중앙은행이 더는 수치를 공개하지 않은 상황마저 발생했다.

중국 경제에 의존도가 높은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랜드화 가치도 사상 최저치로 추락했다.

자원 부국인 콜롬비아의 통화 가치 역시 올해 10.6% 떨어지며 약세를 면치 못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주요 원자재 가격의 하락으로 자원 수출로 먹고사는 국가들의 경제는 더 큰 하강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 위기의 동남아 3국+터키, 정정불안 악재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은 위기의 동남아 3개국으로 꼽힌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역시 자원 수출국인 동시에 통화 가치가 크게 폭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국가의 통화 가치는 각각 17년 만에 최저로 떨어져 외환위기 가능성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인도네시아 경제는 성장 둔화와 높은 인플레이션에 발목이 잡혔다.

재정적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경상수지도 적자로 돌아선지 오래다.

김두언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시장 개입에 나서면서 외화보유액은 5개월 연속 감소했다"며 "루피아화의 가치 하락은 외채 상환 부담을 높이는 요인이어서 재정수지 적자 규모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외화보유액이 2008년 이후 처음으로 1천억 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1998년 외환위기의 출발점이었던 태국은 이후 외화보유액을 꾸준히 늘렸지만 외채 역시 급증하는 점이 불안 요인이다.

말레이시아와 태국은 경기 둔화 외에 정정 불안에도 시달리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나집 라작 총리의 비자금 의혹 사건으로 내홍을 앓고 있다.

태국에서는 지난해 군부 쿠데타를 겪으면서 위축된 수출, 투자, 소비가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터키 리라화 가치는 정정불안 등의 이유로 올해 초 대비 25% 하락해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통화 약세가 심각해 수출 부진을 해결하기 위한 추가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는 것도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 신흥국 부도 위험 급등, 위기의 진원지는 중국
위기에 빠진 신흥국들의 부도 위험 지표는 2~8년 만에 최고조로 올랐다.

브라질의 5년 만기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에 붙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350bp(1bp=0.01%포인트)까지 상승해 2009년 3월 이후 8여 년 만에 가장 높았다.

CDS는 채권을 발행한 국가나 기업이 부도났을 때 손실을 보상하는 파생상품으로 가산 금리(프리미엄)가 붙는다.

CDS 프리미엄이 높아지는 것은 그만큼 해당 국가 또는 기업의 부도 위험이 커졌음을 뜻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CDS 프리미엄도 최근 290bp 수준까지 치솟아 2009년 4월 이후 최고였다.

터키의 부도 위험 역시 3년 만에 최고였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들의 부도 위험도 급등했다.

통화 급락 여파로 신흥시장에서는 자금이 급속하게 빠져나가고 있다.

금융정보제공업체 EPFR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러시아와 인도네시아, 터키를 포함한 신흥시장에서 올해 1∼7월 260억 달러(30조8천억원)의 자금을 빼갔다.

신흥국들의 채권 금리도 급등했다.

말레이시아는 30억 링깃(8천420억원) 규모의 10년 만기 국채 발행에 나섰지만 흥행이 쉽지 않아 보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현재 말레이시아 10년물 금리는 연 4.401%로 올해 2월 저점(3.742%)에서 0.7%포인트가량 올랐다.

브라질, 인도네시아, 러시아, 터키 등의 국채 금리도 지난달부터 급등세다.

전날 기준 브라질 10년물 금리는 5.383%로 올해 저점(3.966%)에서 1.4%포인트 이상 올랐다.

인도네시아(저점 3.594%→전날 4.677%), 러시아(10.240%→11.710%), 터키(6.800%→9.970%)의 10년물 금리도 1~3%포인트 급등했다.

신흥국들 위기의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최대 자원 수입국인 중국의 경기 둔화가 유가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을 끌어내렸다.

최근 중국 금융당국이 전격적으로 단행한 위안화 평가절하는 가뜩이나 힘들어하는 자원 수출 신흥국의 통화에 직격탄을 날렸다.

중국이 '환율 카드'를 꺼내 들 만큼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경제 불안감이 증폭됐기 때문이다.

최근 주가 폭락과 수출 부진 등으로 중국 경기 전망이 어두운 만큼 신흥국들의 위기감도 쉽게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저성장 우려가 나오는 한국 경제의 앞날도 밝지 않다는 전망이 많다.

한국의 최대 무역 교역국인 중국 경기가 휘청거리는데다 신흥국 위기는 직간접적으로 한국 금융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위안화의 갑작스런 절하는 중국 경제와 연관성이 높은 국가들을 중심으로 세계 금융 불안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한국 역시 중국 경제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해외시장에서 중국 기업과의 경합관계로 위안화 절하의 부정적인 효과가 큰 나라로 분류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최윤정 김남권 기자 merciel@yna.co.kr, kong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