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부동산시장 활황 영향으로 급증세
미 금리 인상 등 대외변수 따라 '폭탄'될 수도
관리 대책으론 한계…"가계 지출 구조 바꿔야"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로 세계경제에 불안감이 엄습한 가운데 한국경제의 최대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의 증가속도가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이은 금리인하와 전세가격 폭등, 정부의 부동산시장 활성화 대책 영향으로 가계가 주로 집을 사기 위해 빚을 늘린 영향이 컸다.

전문가들은 최근처럼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해진 상황에서 가계부채가 금융불안을 확산시킬 요인이 될까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가계부채 관리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부채 증가속도를 줄일 수 있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강화 같은 핵심규제가 빠져 있어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가계부채 1천100조원 시대…저금리·부동산 활성화 대책 여파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가계신용 자료에 따르면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신용카드 사용액 등)을 합한 전체 가계신용 잔액은 6월말 현재 1천130조5천억원으로 1분기말의 1천98조3천억원보다 32조2천억원(2.9%) 증가했다.

통산 2분기의 가계신용 증가액이 10조∼15조원 수준에 그친 점을 고려하면 평소보다 2배 넘게 가계부채가 증가한 것이다.

이는 작년 8월 이후 4차례에 걸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와 정부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DTI 규제 완화가 가져온 결과물이다.

전셋값 고공행진과 전세의 월세 전환이 주택 매입 수요를 자극해 가계부채를 늘리는 촉매 역할을 했다.

저금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가계부채는 당장 금융안정 측면에서 불안을 야기할 만한 큰 위험은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연구실장은 "최근 주택담보대출 증가가 투기적 수요가 아닌 실수요 위주인 만큼 부실화할 리스크는 크지 않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6월 낸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최근 개발한 가계부실위험지수(HDRI)로 평가한 결과 112만 가구의 부채가 부실 위험이 있다고 밝혔고, 고액자산가나 자가주택 거주자도 위험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 미국·중국발 위험 산재…가계부채로 불안 확산 우려

하지만 대내외적으로 경제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급증하는 가계부채는 한국경제를 집어삼킬 만한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가시권 내에 들어온 위험요인은 미국의 연내 금리인상 예고이다.

금리인상 속도와 폭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세계경제가 경험해 보지 못한 '가보지 않은 영역'이다 보니 후폭풍이 얼마나 거셀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가계부채가 현 상황에서는 금융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며 "다만 위부 충격이 왔을 때 가계부채는 금융불안을 확산시킬 주요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발 금리 상승, 부동산 시장 침체, 은행의 만기 불연장, 가계소득 감소 등 발생 가능한 다양한 위험 요인이 경제에 충격으로 오게 되면 가계부채 문제와 얽히면서 금융위기로까지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의 증시 폭락, 위안화 평가절하 이후 나타난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도 가계부채의 덫에 빠진 한국경제를 더 불안케 한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최근 일주일간의 국제금융시장 상황을 상기해 보면 한국경제를 둘러싼 대외변수가 너무 불안하고, 가계부채로 대변되는 국내경제 변수도 위험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정부의 단기부양책은 필요했던 조치였지만, 한국경제의 가장 취약한 고리였던 가계부채를 악화시키는 것을 수단으로 썼던 것은 잘못된 선택이고, 위험한 도박이었다"고 비판했다.

◇ 가계부채 증가속도 관리해야…가계도 소비행태 개선 필요

전문가들은 무섭게 증가하고 있는 가계부채의 속도를 줄이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는 모처럼 살아난 주택거래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DTI 강화와 같은 금융규제는 피하고 있다.

박창균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를 줄일 방안은 DTI 규제강화와 기준금리 인상 등 두 개뿐"이라며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두 개 수단은 현재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정부도 가계부채 속도를 직접적으로 줄일 수 있는 마땅한 정책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내놓은 안심전환대출과 원리금 분할상환 유도 등 가계부채 대책은 미국의 금리 인상과 같은 대내외 여건 변화로 시장상황이 나빠지더라도 대출이 부실화되지 않도록 '부채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준협 실장은 "그동안의 가계부채 대책은 부채의 질 관리에만 초점을 맞췄다"며 "앞으로는 부채 총량 증가 속도를 어떻게든 낮추는 대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낮추려면 가계가 빚을 갚는데 충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금 상환을 최대한 늦추고 이자면 내면서 다른 지출을 줄이지 않는 소비 행태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창균 교수는 "한국의 가계는 대출 원금 상환보다도 자녀의 학원비 지출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가계부채 대책도 중요하지만 비정상적인 한국 가계의 지출 구조를 바꾸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이지헌 기자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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