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발목 잡힌 규제비용총량제…박근혜 정부 규제개혁도 '용두사미' 되나
정부는 지난해 3월 1차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열고 규제비용총량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행정규제기본법을 2014년 안에 개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해 8월27일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은 1년이 돼가지만 아직까지 ‘국회의 덫’에 걸려 있다. 이번 정부의 규제개혁도 용두사미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년 동안 국회에서 발목

여야는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을 놓고 좀처럼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별개 이슈인 규제개혁위원회의 역할을 축소하는 법안을 지난 3월 발의하면서 규제비용총량제 논의를 지연시키고 있다. 7월21일까지 열린 행정규제기본법에 대한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도 야당은 규제개혁위원회 위상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했다.

핵심인 규제비용총량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냈다.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규제비용총량제를 법률로 정한다는 것은 난센스”라며 “규제비용을 계산해 총량 관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작년만큼 적극적이지 않다. 6월 임시국회의 새누리당 중점처리 법안 111건에 행정규제기본법은 포함되지 않았다. 공무원연금법 등에 밀린 것으로 적극적인 입법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오는 16일 열리는 당정청 정책조정협의회에 포함될지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야당은 정부 정책에 일단 반대하고 보자는 것 같고 여당 역시 규제가 무기인 관료사회의 반발 등으로 규제비용총량제가 부담스러운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부의 입법 의지도 약해져

5월6일 열린 제3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도 규제비용총량제는 찬밥 신세였다. 향후 2단계 규제개혁 추진 방안을 보면 규제시스템 개혁 부문은 △규제비용총량제 시범사업 전면 실시 △규제비용자동산정 시스템 도입 △규제품질을 높이기 위한 항구적인 인프라 구축을 하겠다고만 돼 있다. 규제비용총량제를 법제화하겠다는 내용은 빠져 있다. 이에 대해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입법은 국회 고유의 권한이기 때문에 행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에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

정부가 국회에 신속한 처리를 요청하는 경제활성화 등 신속처리법안 목록에도 행정규제기본법은 빠져 있다. 정치권에서는 “국무조정실만 어쩔 수 없이 총대를 메고 있지만 정부가 내심 규제비용총량제 입법에 소극적”이라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규제개혁 동력 상실 우려

재계에서는 규제비용총량제가 연내 입법화되지 않으면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내년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고, 2017년엔 대통령 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이혁우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금 같은 분위기로는 19대 국회 처리는 힘들 것 같다”며 “20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규제비용총량제의 법제화는 규제개혁이 정권의 의지가 아니라 법에 의해 상시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만든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법으로 규제개혁을 강제하는 만큼 정부가 바뀌어도 규제를 줄여갈 수 있어서다. 2004년 노무현 정부 시절 만들어진 규제총량제는 법제화에 실패하면서 2년 만에 없어졌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규제개혁이 정치 이슈로 변질되고 있는 게 안타깝다”며 “규제비용총량제 입법화가 무산되면 다른 규제개혁의 추진 동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규제비용총량제

규제를 새로 만들게 될 때 비용을 기준으로 기존 규제를 폐지해 규제비용 총량이 더 이상 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신설 규제를 관리하면서 기존 규제의 감축을 병행해 규제비용의 증가를 막겠다는 취지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