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 한국 경제 이끈 기업·기업인] 쪼개고 합치고 '기업 체질 개선'…산업판도 바꾼다
한국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기업들의 이합집산이 본격화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기업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쪼개고 합치기를 거듭하며 한국 산업계 판도를 바꾸고 있다.

구조조정에 대한 인식이 과거에는 부정적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기업 체질을 개선하는 방안이란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재계는 분석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구조조정은 기업이 위기 상황에 닥쳤을 때 시행했다. 요즘은 수시로 구조조정을 진행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합집산을 활발히 하는 대표 기업 중 하나가 삼성그룹이다. 삼성은 지난해 11월 방위산업·석유화학 부문 계열사인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을 한화그룹에 전격 매각했다. 매각 규모는 1조9000억원으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 간 ‘빅딜’(대규모 거래)로는 최대 규모다.

삼성은 핵심 사업인 전자·금융·건설에 전력투구하기 위해 사업을 과감히 재편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엔 삼성SDS의 삼성SNS 흡수합병, 삼성SDI의 제일모직 소재 부문 합병 등 총 8차례의 사업·지배구조 재편 작업을 진행했다. 비슷한 계열사를 묶어 경쟁력을 높인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도 진행 중이다.

한화그룹도 과감한 사업조정으로 회사 경쟁력을 강화한 기업으로 꼽힌다. 한화는 1997년 말 구조조정을 통해 32개였던 계열사를 2000년 말 24개로 줄였다.

자산이나 매출 등 외형을 중요하게 여겼던 당시 재계 분위기에선 파격적인 조치였다. 이를 통해 1997년 말 기준 1200%에 달하던 부채비율을 2000년대 들어 130%대로 낮췄다. 이후 2002년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을 인수하면서 제조와 레저 중심이었던 사업구조를 금융부문으로 확장했다. 지난해 11월엔 삼성의 방위산업·석유화학 부문 계열사를 사들이며 자산 규모를 37조원에서 50조원대로 키웠다.

두산그룹 역시 맥주, 음료를 주축으로 한 소비재 사업을 포기하는 대신 한국중공업, 대우종합기계 등을 인수하며 중공업사업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했다. 포스코는 주력사업인 철강과 에너지, 소재에 집중하겠다는 취지에서 포스코특수강과 포스화인 등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해외 기업 M&A를 검토, 추진하는 사례도 많다. 효성은 최근 몇 년간 국내외 기업을 꾸준히 인수하며 타이어코드·스판덱스사업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재계에선 앞으로 사업 재편이 더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1990년대부터 활발한 M&A로 전문 사업영역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키운 것처럼, 국내 기업도 크고 작은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발전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