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훈 기자 ] 경기 불황도 모르고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자동차들이 있다.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럭셔리카'다. 마세라티, 벤틀리, 롤스로이스,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대당 평균 가격이 수억 원에 달하지만 고객들의 주문은 멈출 줄 모른다.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1억원이 넘는 고가 수입차의 신규 등록대수는 1만2123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 성장했다.

럭셔리카 업체들은 신차 홍보를 할 때 매스미디어를 잘 활용하지 않는다. 오너들은 매스컴에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고객들 상당수가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기업가, 자산가 등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들이 많아서다. 이처럼 부유층을 상대로 한 럭셔리카 마케팅은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페라리 '488 GTB' 사전 주문고객들이 일본 출시행사에 참석한 모습. (사진 제공=FMK)
페라리 '488 GTB' 사전 주문고객들이 일본 출시행사에 참석한 모습. (사진 제공=FMK)
◆ 럭셔리카 마케팅은 '비밀스럽게'

벤틀리의 한국지사는 지난해 연말 서울 신라호텔에서 아주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했다. 영국의 보석 브랜드인 그라프와 손잡고 영국 상류층 문화를 알리는 벤틀리&그라프 디너쇼를 열었다. 이 행사에 초대 받은 이들은 벤틀리 고객 단 7명뿐. 특별히 엄선된 벤틀리 오너이자 그라프 회원에게 주어진 특전이었다.

행사에 초청 받은 고객들은 벤틀리 의전차를 제공받는 영광을 누렸다. 호텔에선 메인 셰프가 요리한 최고급 만찬을 대접 받았다. 벤틀리 관계자는 "영국을 대표하는 두 브랜드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기획한 자리였다"며 "영국의 가장 럭셔리한 문화를 소개함으로써 벤틀리 오너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벤틀리는 서울의 부자 동네로 유명한 청담동에 가야 1~2대씩은 볼 수 있다는 차다. 전시장은 청담동 1호점과 신흥 부촌으로 떠오른 부산 해운대 2곳에 두고 있다.

청담동에 국내 유일한 전시장을 둔 또 다른 명품 자동차가 있다. 영국 왕실이 탄다는 롤스로이스다. 롤스로이스는 국내 등록대수가 200여대에 불과한 희소가치를 인정받는 차다.

롤스로이스 고객은 전시장을 방문하는 순간부터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롤스로이스 딜러는 손님이 매장으로 들어오면 곧바로 창을 커튼으로 가리고 내방 고객 외에 다른 손님은 일절 방문을 허용하지 않는다. 롤스로이스를 판매하는 코오롱모터스의 최재준 딜러는 "고객이 내방하면 바깥에서 매장을 볼 수 없도록 신분 유지를 철저히 보장해 준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스포츠카 페라리는 신차 출시에 앞서 가망 고객에게 베일을 먼저 벗긴다. 페라리의 수입사인 FMK(포르자모터스코리아)는 올 상반기 3억원대 중반의 신모델 '488GTB'를 출시했다. 이에 앞서 사전 예약을 한 고객 25명은 일본에서 열린 쇼케이스에 초청돼 신차를 시승해 봤다. 이전 페라리 캘니포니아 모델의 경우 백화점 VVIP급 여성고객만 초청한 쇼케이스를 열기도 했다.

현영석 한남대 경영학과 교수는 "명품을 추구하는 고객들은 남들과 다른 특별한 서비스를 받길 원하며 차별화 된 서비스를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며 "업체들은 자기 과시욕과 안전에 대한 욕구가 강한 고급차 소비자들의 명품 선호 경향을 절묘하게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당 4억원에 달하는 롤스로이스 레이스. (사진 제공=BMW코리아)
대당 4억원에 달하는 롤스로이스 레이스. (사진 제공=BMW코리아)
◆ "나만의 차 만들어 주세요"…'맞춤제작'은 필수

초고가차 메이커들은 주문제작 서비스를 통해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고 있다. 똑같은 차를 거부하는 고객을 위한 '맞춤제작' 방식을 따른다. 차별화한 외관뿐 아니라 내부가죽 색상이나 시트 종류 등을 주문 고객이 선택할 수 있다.

롤스로이스는 별도로 비스포크(bespoke) 팀을 두고 있다. 롤스로이스의 고향인 영국 굿우드 공장에서 세계적인 실력을 갖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장인이 서로 협력해 최고의 맞춤제작 자동차를 선사한다. 고객이 자동차를 손에 넣는 과정은 단순히 차를 구매하는 행위 그 이상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롤스로이스 고객은 딜러를 통해 전 세계 어디서나 자신의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제작해 줄 수 있는 비스포크 팀과 소통할 수 있다. 또 디자이너와 직접 상의하거나 자동차 제작 과정을 확인하고 싶은 고객에게는 영국 굿우드를 방문할 수 있는 초대장이 상시 제공된다.

벤틀리의 주문제작 서비스 '뮬리너(Mulliner)'는 100년 전통을 자랑한다. 뮬리너 서비스는 고객 요구에 따라 제작 시간이 달라진다. 고객과의 상담을 통해 제작 아이디어를 얻고 최종 확인까지 고객의 의사 결정을 따른다.

스포츠카 페라리 역시 제작의 전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고객이 주문하면 최소 6개월 이상 기다려야 차를 출고할 수 있다. 페라리는 연간 7000대 정도의 만드는 소량 생산 시스템을 통해 페라리 브랜드의 전통과 감성을 고객과 공유한다. 지난달 방한한 페라리 본사 임원은 "우리는 단순히 차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페라리만의 경험을 고객에 선사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김정훈 한경닷컴 기자 lenn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