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원샷' 없는 '원샷법'
조선 철강 전자 자동차 등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던 주력산업이 일제히 비상이 걸리면서 산업위기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일부 언론에서는 ‘산업정책이 안 보인다’는 비판을 쏟아낸다. 산업정책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뭐하고 있느냐는 얘기다. 하지만 산업부는 산업부대로 우리가 뭘 할 수 있느냐며 볼멘소리를 한다. 밖에서는 새로운 산업을 빨리 발굴하라고 재촉하지만 정부는 그럴 능력도 없고, 설사 있다고 해도 과거처럼 밀어붙일 수단도 없다는 하소연이다.

정상기업도 생존 담보 못해

정부가 답답할 때면 곧잘 들고나오는 게 ‘선택과 집중’이다. 그러나 ‘집중’은 둘째치고 뭘 ‘선택’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게 지금의 정부다. 과거 추격형(catch-up)산업 육성 때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다. 정권마다 신성장동력 리스트를 내놓지만 다 겉도는 것도 과거식의 정부 주도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증거다. 그렇다고 정부가 할 일이 없다고 하는 것도 무책임한 소리다. 정부가 못하면 기업이라도 위기 돌파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건 다 해 볼 수 있게 멍석은 깔아 줄 수 있다.

기업의 사업재편을 지원한다는, 그 이름도 거창한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안(일명 원샷법)’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인수합병(M&A) 등 사업재편시 세제, 금융, 규제 등의 측면에서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혜택은 둘째치고 지원 대상을 과잉공급 업종으로 제한한 것부터가 너무 소극적이다. 과잉공급 분야 기업이 과잉공급 해소나 신성장사업 진출을 위해 사업재편을 추진하는 경우만 그 대상이라면 이는 사업재편이 아니라 부실기업 정리제도에 가깝다.

사실 과잉공급에 처했다는 진단이 나올 정도면 그 기업은 이미 사업재편의 때를 놓친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 한국공학한림원이 개최한 ‘혁신을 원하는가, 파괴자들을 보라’는 포럼은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 누가 경쟁자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스스로 파괴하지 않으면 언제 누구로부터 파괴당할지 모르는 시대라는 진단이다. ‘핵심 역량(core competency)’이 오히려 ‘핵심 경직성(core rigidity)’으로 바뀌어 오도 가도 못한 채 자멸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기업이 왜 망하는지 계량분석을 해 보니 상식과 달리 ‘약점’ 때문이 아니라 ‘강점’ 때문인 경우가 오히려 많다는 것이다.

무엇이 ‘핵심’이고 무엇이 ‘비핵심’인지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 마당에 과잉공급이라는 전통적·사후적 ‘구조조정(restructuring)’ 기준만을 고집하는 건 너무 한가한 소리로 들린다. 사실상 ‘사업 포트폴리오 재구축(new structuring)’을 불사하는 사전적 사업재편이 되지 않으면 정상기업조차 언제 부실기업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얘기다.

일본이 한국과 다른 이유

원샷법이 벤치마킹했다는 일본의 ‘산업활력법’은 장기불황 탈출이라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 1999년 한시법으로 제정된 이 법의 초점은 구조조정을 넘은 신성장사업 지원이었다. 그 후 ‘활력재생→혁신→경쟁력’ 등으로 법이 연장되면서 지원 대상도 확대됐다. 법이 일본 기업의 절박한 사업재편 니즈(needs)에 호응한 것이다. 일본 기업의 부활을 결코 ‘엔저 효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우리 정부와 국회는 그런 멍석도 하나 못 깔아주나.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