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협력사까지 보상"
삼성전자가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을 위해 1000억원대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이 기금으로 반도체 사업장에 근무하다 질병에 걸린 회사 직원은 물론 협력사 직원까지 보상해주기로 했다. 지난달 23일 나온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의 권고안을 거의 대부분 수용한 것이다.

◆협력사 직원까지 모두 보상

삼성전자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조정위 권고안에 대한 삼성전자 입장’을 3일 발표했다. 먼저 삼성은 1000억원을 들여 사내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조정위가 권고했던 공익법인은 설립하지 않기로 했다.

이 기금은 피해자 보상 외에 산업 안전 증진을 위한 연구조사, 반도체 관련 중소기업 안전컨설팅 등에 쓰이게 된다.

삼성 측은 “법인을 설립하는 과정 등에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피해자 보상이 지연되고, 상근 인력 운영 등에 불필요한 비용을 쓰게 된다”며 “최대한 빨리 피해자에게 보상하기 위해서는 사내 기금 형식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가족대책위원회도 조정위의 권고안에 대해 지난달 30일 “보상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며 “하루빨리 보상받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피해보상은 조정위가 권고한 대로 삼성전자 직원은 물론 상주 협력사 직원들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보상 기준도 별도 인과관계를 따지지 않고 조정위가 마련한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상 질병 역시 조정위가 제시한 업무 연관성이 의심되는 백혈병, 림프종 등 12개의 질환 중 유산·불임을 제외한 11개 항목을 대상으로 하기로 했다.

아울러 외부 전문가들로 종합진단팀도 구성하겠다고 했다. 이들을 통해 삼성전자 사업장을 진단하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조속히 처리하겠다고 했다. 근로자들의 건강권 증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사과문도 발표할 예정이다. 다만 외부 ‘옴부즈맨’들이 삼성전자 사업장으로부터 매년 정기적으로 정보를 받도록 한 조정위의 권고안에 대해서는 “경영에 간섭하는 문제여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경영 외적 문제에 힘 쏟지 않겠다”

이날 발표로 삼성은 지난해 5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대해 사과와 보상 방안을 밝힌 이후 1년3개월 동안 이어진 협상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가 처음 문제를 제기한 이후 8년 만이다. 삼성 측은 피해자 가족 등 이해관계자들이 받아들일 경우 보상 작업을 바로 진행할 계획이다. 반올림 등이 반대해도 이번에는 협상을 마무리짓겠다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이번 발표를 ‘파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1000억원이라는 금액도 크지만 협력사 직원을 보상하거나 인과관계를 따지지 않고 보상하는 문제는 현행 법과도 충돌하기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기업의 피해보상 방법에 예외적인 선례를 남길 수 있어 고민이 많았지만, 과학적인 분석보다는 인도적인 차원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로 최고경영진이 최종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더 이상 경영 외적인 일에 힘을 쏟지 않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주력 제품인 스마트폰 판매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데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중국의 공세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더 이상 외부적인 일에 휩쓸릴 수 없다는 절박함이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남윤선/정지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