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보금리 담합' 칼 빼든 공정위] 글로벌 은행, 이메일로 '리보금리 조작 회의'…"국내 투자자 피해 상당"
공정거래위원회가 글로벌 대형은행들의 리보(LIBOR·런던 은행 간 금리)금리 담합에 칼을 빼 들었다. 리보금리는 450조달러에 달하는 전 세계 금융상품의 지표금리로 활용된다. 리보금리에 가산금리를 얹어 달러표시채권 등을 발행한 국내 기업 등은 이들 은행의 리보금리 조작으로 금전적인 손실을 봤을 가능성이 크다. 공정위가 구체적인 피해를 입증하면 국내 투자자들은 글로벌 대형은행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2012년 미국 법무부와 영국 금융감독청 등이 바클레이즈 UBS 등에 담합을 이유로 총 20억달러(약 2조2000억원) 규모의 벌금을 부과하자 리보금리 파생상품에 투자했던 미국 뉴브리튼시 소방관기금 등은 이들 은행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리보금리 연동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미국인들도 집단소송을 시작했다.

◆투자손실 막으려고 금리 조작

12개 글로벌 대형은행들은 2005~2009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리보금리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리보금리가 은행의 금리 제출 담당자들이 매일 제출하는 적정금리의 평균으로 결정된다는 점을 악용했다.

리보금리가 일정 수준 밑으로 낮아질 경우 자신들이 투자한 파생상품에서 손실이 발생할 것을 우려한 트레이더들은 금리 제출 담당자에게 ‘제출금리를 올려 리보금리를 높여달라’고 요청했다. 금리 제출 담당자들은 다른 은행 담당자들에게 ‘높은 수준으로 제출해주면 다음에 도와주겠다’며 담합했다.

은행 관계자들은 거리낌 없이 리보금리를 조작했다. 담합을 조사한 미국 연방검찰청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대형은행의 한 트레이더는 “리보금리가 연 4.05% 밑으로 떨어지면 0.0025% 낮아질 때마다 15만달러의 손실이 발생한다”며 이메일로 금리 제출 담당자에게 담합을 요청했다.

금리 제출 담당자는 이 같은 요청에 대해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한다”며 제출 금리를 올 렸다. 미 연방검찰청은 “리보금리를 조작한 은행들은 상황에 따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다”고 발표했다. 미국 법무부와 영국 금융감독청,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등은 현재까지 바클레이즈 UBS 등에 총 20억달러가 넘는 벌금을 부과했다.

◆국내 공기업들도 리보채권 발행

공정위는 리보금리 담합 관련 서면자료를 받아 현재 국내 투자자들의 피해 여부를 살피고 있다. 공정위는 은행 한 곳으로부터 담합과 관련한 자진신고를 받아 기초자료도 확보했다. 담당부서인 국제카르텔과에는 금융조사 전문 사무관 두 명을 보강했다.

리보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 주기적으로 이자를 지급하는 달러 채권(리보 연동 변동금리부채권)을 발행한 회사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봤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전력 등 공기업과 국내 대기업 다수가 여기에 해당한다.

예컨대 채권을 발행한 국내 기업이 6개월 뒤 중간이자를 지급하기로 했는데, 이때 리보금리가 담합을 통해 상승했을 경우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돈을 이자로 쓰는 것이다. 2005~2009년 국내에서 발행된 리보 연동 변동금리부채권 발행액은 총 80억2700만달러(약 9조원)다.

조작된 리보금리 때문에 비싼 값에 달러를 조달한 국내 은행이나 리보금리를 기준으로 고정금리부 채권을 발행한 공공기관 등이 간접적인 피해를 봤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리보금리가 일정 수준에서 벗어나면 손실을 보는 파생결합증권(DLS) 투자자들의 피해 여부도 따져봐야 한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05~2009년 총 2061억원 규모의 리보금리 기초 DLS가 발행됐다.

세종=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