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시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이 그리스 3차 구제금융 개시에 합의한 데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지난 1월 그리스에서 시리자(급진좌파연합)가 '구제금융 재협상'을 공약으로 총선에서 승리한 이후 6개월가량 진행된 협상 과정에서 올랑드는 초·중반에 눈에 띄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리스 국민과 유럽 언론은 유로존 최대 경제대국으로 그리스 최대 채권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입만 바라봤다.

이달 5일 국제 채권단의 협상안에 대한 그리스 국민투표 '반대' 이후 유로존에서는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불가피하다는 협상 회의론이 지배적이었다.

이후 불과 며칠 뒤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받아들일 만한 개혁안을 내놓고 결국 구제금융 개시에 합의까지 한데는 프랑스의 중재가 결정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랑드 대통령은 국민투표 이후 "그리스에 대한 채무탕감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경 입장을 고수한 메르켈 총리를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올랑드 대통령은 6일 파리 엘리제궁(프랑스 대통령궁)으로 메르켈 총리를 초청해 그리스 문제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올랑드 대통령은 "(그리스에) 협상의 문은 열려 있다"면서 "이제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유로존에 남고자 하는 진지하고 믿을 만한 안을 내놓느냐에 달렸다"며 독일과 그리스 중재자로 적극 나섰다.

프랑스 정부는 9일 그리스가 채권단에 새 개혁안을 제출하기에 앞서 개혁안 작성을 돕고자 재무부 전문가 10명을 파견했다.

이 팀은 유클리드 차칼로토스 그리스 재무장관을 도와 설득력 있는 개혁안을 작성하는데 일조했다.

그리스는 연금삭감과 부가세 개편, 국방비 축소 등으로 2년간 재정지출을 130억 유로(약 15조1천억원) 줄이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개혁안을 제출했다.

이 개혁안 제출 뒤 올랑드는 유럽 정상 가운데 처음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표시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새로운 제안이 "진지하고 신뢰할 만한 것"이라면서 "그리스는 이 같은 제안으로 유로존에 남아 있으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밝혔다.

12일 오후 시작해 13일 오전까지 17시간 가까이 이어진 유로존 정상회의에서도 올랑드 대통령의 뚝심은 돋보였다.

메르켈 총리는 1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존 정상회의에 도착해서 "오늘 협상이 힘들 것"이라고 말했으나 올랑드 대통령은 "오늘 밤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며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결국, 13일 오전 올랑드 대통령은 그리스 구제금융 개시 합의 소식을 알리면서 "그렉시트는 우리 문명 중심 잃는 것과 다름없었을 것"이라면서 "그리스 타결은 유럽 전체에 이익이 됐다"고 환영했다.

이처럼 올랑드 대통령이 그리스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데 대해 프랑스와 독일의 라이벌 관계와 유럽 정치 통합, 2017년 대선 등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EU)을 주도적으로 창설한 프랑스로서는 단일 통화권을 유지해 유럽의 분열을 막고자 했다는 것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유럽의 후퇴"라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를 막고자 했다.

또 2차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당한 역사적 경험에다 독일과 전통적 라이벌 관계도 프랑스가 독일에 맞서 그리스를 두둔한 이유로 풀이된다.

아울러 임기 2년을 남기고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는 올랑드 대통령으로서는 프랑스 좌파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치프라스 총리를 구하는 것이 메르켈 총리를 추종하는 것보다 차기 대선에서 유리하다는 판단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분열을 막고 정면으로 충돌하는 독일과 그리스의 중재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냄으로써 올랑드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역량을 과시했다는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파리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sungjin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