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에서 압도적 표차로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안을 거부하기로 한 지난 5일, 그리스 전역은 축제 분위기였다. ‘가혹한’ 긴축정책이 완화되고 부채도 탕감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서였다. 그로부터 1주일 뒤, 그리스 국민은 허탈감에 빠졌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채권단과 합의한 긴축안이 채권단이 당초 요구했던 방안보다 더 가혹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다.

그리스는 13일 채권단과 연금 삭감을 비롯해 부가세 인상, 국방비 축소 등으로 2년간 재정지출을 130억유로 줄이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개혁안에 합의했다. 국민투표에 앞서 채권단이 요구했던 개혁안보다도 강도가 세졌다. 아테네 커피숍에서 일하는 아나 크리스토퍼리디(37)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국민투표에서 긴축안 반대에 한 표를 던졌는데 찬성에 표를 던진 것과 같은 결과가 됐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리스 시민들은 이날 협상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그리스 점령에 비유했다. 한 그리스 시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탱크를 사용했고, 지금은 뱅크(은행)를 사용한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하지만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가 해소된 데 안도하는 반응을 보인 시민들도 있었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일부 그리스 시민은 “개혁 조치로 앞으로 생활이 더 어려워지겠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며 “좋든 싫든 채권단과 협상을 타결한 것이 현재로선 최선”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리스 기업인들은 그렉시트를 피하게 된 점은 다행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지난 6개월 동안 악화된 경영 환경이 개선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우려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