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해 리팩 회장, 애프터서비스 아닌 '비포서비스'로 승부…외국기업 신뢰 업고 고성장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지자 포장기계 생산업체 리팩 직원들은 할 일이 없어졌다. 기계 주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남는 시간에 기계를 손보는 일도 하루 이틀이었다.

이일해 회장(사진)은 “외환위기 때 애프터서비스(AS)가 아니라 비포서비스(BS)라는 것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제품을 사간 회사들을 찾아가 먼저 기계를 손봐주는 것이었다. 장기적으로 거래처와 신뢰를 쌓는 데 시간을 투자한 것이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돌았다. 이 회장은 “회사가 어려워졌다고 한탄만 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동안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시간이 없어 개발하지 못했던 기계 개발을 시작했다”고 했다. 이 제품이 지퍼가 달린 포장재를 생산하는 기계였다.

개발을 마무리할 때쯤 한 미국인 무역업자가 회사를 찾아왔다. 어디선가 리팩 얘기를 듣고 무작정 찾아왔다고 했다. 개발 중인 기계를 보더니 그 자리에서 마음에 든다고 납품할 준비를 하라고 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 곧장 기계를 발주했다. 이후 리팩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미국에 이어 유럽, 일본으로 수출 지역을 늘려갔다. 지금은 국내 1위의 포장기계 생산업체가 됐다.

이 회장은 “위기가 회사를 더욱 강하게 했다”며 “위기가 아니었으면 해외 진출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50억원이던 매출도 최근 300억원대로 늘었다. 코카콜라, 네슬레, 커크랜드 등 세계적 브랜드들이 리팩 기계에서 나온 진공, 지퍼 포장용기를 사용한다. 그는 “하반기 중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포장용 기계를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리팩의 꾸준한 성장에 대해 이 회장은 “한눈팔지 않고 한길을 파온 것도 리팩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1969년 서울 방산시장에서 비닐 접착기를 판매하면서 시작한 포장 관련 사업에서 한 번도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 적이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직원들의 평균 근속기간도 10~20년이 대부분이다. 37년 근무한 직원도 있다. 이 회장은 “직원 중에도 장인정신이 있는 사람이 있다”며 “신뢰를 쌓아 숙련된 이들이 회사에 뿌리박게 하는 게 경쟁력의 비결”이라고 했다.

이 사장은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기로 하고, 요즘은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그는 “직원들이 가장 어려울 때가 아이들을 대학 보낼 때”라며 “장학재단을 설립해 일부는 직원들에게 지원하고, 일부는 탈북자가 국내에 정착하는 것을 돕는 데 쓰고 싶다”고 말했다. 회사가 추구하는 공동의 가치를 직원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란 게 이 회장의 생각이다.

인천=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