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재편 계획 일환…올바른 협상 원천적 불가능"

그리스 3차 구제금융 협상 막판에 독일이 '5년간 한시적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를 제안해 논란이 인 가운데 애초부터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의 목적은 그리스 퇴출이었다고 그리스 전(前) 재무장관이 주장했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전 재무장관은 12일 밤(현지시간) 자신의 블로그에 "쇼이블레가 내게 직접 그렉시트를 원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바루파키스는 독일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 16일자 호 지면에 실릴 이 기고문에서 그리스와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체)이 지난 5개월 동안 벌여온 구제금융 협상은 애초부터 결코 성공할 수 없었으며 그 핵심 이유는 쇼이블레에 있다고 비판했다.

바루파키스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에 치프라스 정권이 들어서기 훨씬 이전에 쇼이블레는 '유로존 재편 계획'(소위 '유럽계획')을 세웠으며 이에 저항하는 회원국들을 '훈육하기 위해'선 그리스가 퇴출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로그룹 주도세력은 쇼이블레의 계획이 '최적의 방안'이라고 생각, 그간의 협상을 이런 방향으로 진행해왔으며 따라서 '합리적 내용'의 타결이 불가능했다는 것이 바루파키스의 주장이다.

바루파키스는 앞서 지난 11일자 영국 일간지 가디언 기고문에서도 지난 수개월 동안의 그리스 채무 협상과정은 프랑스인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고 유럽인들을 겁박하려는 독일의 의도가 주로 지배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디차이트 기고문에서 쇼이블레 유럽계획의 중요 부분이 그렉시트라는 건 "이론이 아니다"라면서 "쇼이블레가 나에게 직접 말했기 때문에 내가 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기고문은 "그리스의 합리적 제안을 독일 언론이 명예훼손하는 것, 그리스 정부의 적절한 채무 구조조정 계획에 대한 독일 정부의 거부, 그리스 정부를 질식사시키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정책결정, 그리스 은행들의 문을 닫게 하는 신호를 ECB에 주는 유로그룹의 결정 등에 대해 그리스 정치인으로서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바루파키스는 "쇼이블레의 계획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유럽인으로서 관찰한 것을 기록하려는 것"을 그 이유로 들며 "독자들이 이 계획을 찬성하고 유럽을 위해 좋은 일로 생각하는지를 묻고 싶다"고 글을 맺었다.

지난 5일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채권단의 구제금융 방안이 거부되자 그리스 3차 구제금융 협상은 '물 건너갔다'는 비관적 전망이 압도했다.

그러나 치프라스 총리의 그리스 정부가 채권단의 당초 안에 맞먹거나 더 엄격한 긴축안이라고 평가받는 계획을 제출하자 분위기는 낙관적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12일 유로그룹회의에서 독일이 '5년 한시 그렉시트' 방안과 함께 훨씬 더 가혹한 긴축과 국유재산 민간매각 방안들을 내놓아 분위기가 또 반전됐다.

'한시적 그렉시트' 제안은 당사자인 그리스와 프랑스 등의 반대에 막혀 합의안에서 삭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단 수면 밑으로 들어갔으나 상황에 따라 언제든 다시 떠오를 수 있다.

현행 유럽연합(EU)의 법규엔 한시적이든 영구적이든, 자발적 탈퇴든 강제 퇴출이든 회원국의 유로존 이탈과 관련한 조항 자체가 없다.

프랑스는 12일 한시적 그렉시트는 없고 유로존 잔류나 영구적 그렉시트냐의 선택만 있을 수 있다면 그리스의 잔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유로그룹에서 다시 한 번 한시적 그렉시트가 논의될 경우 그리스는 자의든 타의든 유로존에서 이탈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그리스는 물론 유로존과 EU 자체가 한 번도 가본 적도, 안내판도 없는 미증유의 길을 걷게 되고 유럽통합의 이상은 뿌리부터 흔들릴 것으로 우려된다.

(서울=연합뉴스) choib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