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국민이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안을 거부했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은 예상 밖으로 차분했다. 미국과 유럽의 주식·채권 가격이 일제히 떨어졌지만 시장의 우려만큼 폭락하지는 않았다.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이 2012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정위기 때와 달리 위기의 전염 가능성을 낮게 판단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6일(현지시간) 유럽 채권시장에서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각각 6bp, 14bp(1bp=0.01%포인트) 올랐다(가격 하락). 채권단 구제금융안에 61%가 반대했다는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가 발표된 직후라 시장에서는 패닉(공황 상태) 수준의 금리 급등을 우려했다.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10년 만기 독일 국채 금리는 3bp 하락한 연 0.76%로 마감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리스 국채 금리가 294bp 급등했지만, 그리스 사태의 위기 전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된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유로존 주변국에서는 큰 변동이 없었다”며 “구제금융안이 통과될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이 빗나갔는데도 시장이 무덤덤하게 반응했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16일 그리스가 채권단을 향해 약탈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비난했을 때 유로존 주변국 국채 금리는 20bp가량 뛰었다.

전문가들은 금융시장이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의 협상력이 약화될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스테파니 플랜더스 JP모간 유럽지역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당분간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커질 수밖에 없지만 유로존 주변국 채권시장의 움직임을 볼 때 그리스 국민투표에 따른 충격이 그리스에 국한된 것으로 판단된다”며 “그리스 위기가 유로존 전반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치프라스 총리의 주장이 힘을 잃었다”고 말했다.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역발상으로 그리스 주식을 사들이라고 권고했다. 그는 이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리스 증시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 증시는 가격 부담이 너무 큰데 그리스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은 매우 낮아 잠재적으로 수익률 향상의 기회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