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유럽 재정위기 때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5개국은 ‘PIIGS(피그스·돼지를 뜻하는 영어 단어와 비슷한 발음)’라는 다소 모욕적인 용어로 한데 묶여 불렸다. 극심한 재정적자로 국가부도가 우려되는, 그래서 유럽은 물론 세계 경제의 골칫거리란 의미에서 붙은 명칭이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5개국은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의 ‘진앙’이었던 그리스는 사실상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졌고, 이탈리아는 ‘그리스 다음타자’로 시장에서 거론되고 있다. 포르투갈은 경제는 나아졌지만 정치적인 문제로 포렉시트(포르투갈의 유로존 탈퇴)가 이슈화되고 있다. 반면 성공적으로 구조개혁을 한 아일랜드와 스페인은 위기에서 벗어나 ‘샛별’과 ‘돌아온 별’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PIIGS 5개국의 명암] PIIGS의 운명, 연금·노동시장 개혁이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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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으로 위기 벗어난 아일랜드·스페인

PIIGS에서 가장 커다란 반전을 이뤄낸 국가는 아일랜드다. 아일랜드는 재정위기 후 공무원 임금 삭감 등 강도 높은 긴축 정책을 폈다. 그 결과 최근 1년간 국가 신용등급이 세 차례나 상향 조정됐다.

지난해 아일랜드의 경제성장률(4.8%)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평균의 다섯 배를 웃돈다. 작년 아일랜드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비율은 109%로 전년도의 123%에서 14%포인트 낮아졌다. 이 같은 경제지표 개선으로 국가 신용등급이 A+까지 올라섰다. 투자전문매체 마켓워치는 “아일랜드는 ‘부채 국가’라는 타이틀을 벗고 유로존 경제를 이끌어나갈 샛별로 탈바꿈했다”고 평가했다.

아일랜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부동산 가격 등이 폭락, 은행시스템이 휘청거려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다. 이후 공무원 임금을 삭감하는 등 긴축정책을 폈다. 낮은 법인세율을 유지해 일자리 창출에도 주력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앞으로 3년간 아일랜드의 연평균 성장률이 3.6%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스페인도 구조개혁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로존 4위 경제대국인 스페인은 한때 과도한 국가채무에 허덕이며 유로존 경제의 발목을 잡는 대표적인 국가로 꼽혔다.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과감한 개혁 정책을 내놨다.

노동시장과 세금제도를 개혁했고 재정지출도 과감히 줄였다. 퇴직금 규정을 완화하는 등 경직됐던 노동시장도 유연하게 바꿨다. 경영난에 몰린 기업이 노동조합과 합의 없이 임금과 근로 시간 등의 근로 조건을 바꿀 수 있게 했고, 해고 조건을 완화해 노동력 재배치를 쉽게 했다.

또 노사의 단체교섭 결과를 산별 노조나 지역 노조 등 상급단체 합의에 우선하게 했다. 임시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도 쉬워졌다. 공무원 임금에도 칼을 댔다. 2010년 이후 스페인 공무원의 실질 임금은 20% 줄었다. 노사협상의 유연성이 확보되자 해외자본의 스페인 투자도 늘었다. 2012년 이후 포드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스페인 내 생산물량은 30~80% 증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사회 전반이 구조조정의 고통을 나눠 성장률을 끌어올렸다”며 “철저하게 ‘고통 없이는 얻는 것이 없다(no pain, no gain)’는 원칙에 충실했다”고 진단했다.

스페인을 ‘돌아온 별’이라고 평가한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2012년 이후 스페인의 변화는 구조 개혁의 모범 사례”라며 “글로벌 경제의 골칫덩이가 이제는 유로존 경제 회복을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위기설 진화나선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금융시장 등에서 ‘제2의 그리스’로 거론되고 있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까지 직접 나서 위기설을 진화하고 있지만 이탈리아 국채금리가 급등(국채값 급락)하는 등 글로벌 투자자들의 우려는 여전하다.

이탈리아는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132.1%(2014년 기준)로, 유럽에서 그리스 다음으로 높다. 물가상승률이 낮고 경제 구조가 취약해 외부 변수에 쉽게 흔들리기 쉬운 국가로 지적되고 있다.

이안 스태나드 모건스탠리 유럽외환전략부문 대표는 “강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스페인과 달리 이탈리아는 경기 재침체를 겪고 있다”며 “노동집약적 산업이 주류인 이탈리아가 중국과 인도 등 저가 제품에 밀려 고전하고 있지만 구조적인 개혁은 더디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다른 PIIGS 국가와 달리 구제금융을 받지 않아 강제적인 구조 개혁이 이행되지 않은 영향도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포르투갈은 작년 3분기 이후 올 2분기까지 연속 성장했다. 올해 GDP는 전년 대비 1.6% 성장하고 재정적자는 15년 만에 처음으로 GDP 대비 3%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2011년 구제금융 지원을 받으면서 연금 삭감 등 긴축 정책을 단행한 결과다. 이런 경제지표 호조와 달리 정치적 변수는 우려 요인으로 꼽힌다.

오는 9월 또는 10월로 예정된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재정 확대를 통한 복지 확충을 공약으로 내세운 좌파 정당의 집권 가능성이 부각돼서다. 포르투갈 정부가 정부 부채 증가를 막기 위해 지출을 삭감하자 높아진 실업률로 국민들의 불만이 커졌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롤단 유라시아그룹 전략가는 “아직 가능성은 낮지만 포르투갈도 재정 위기에 휩싸여 유로존을 탈퇴할 가능성이 있다”며 “포르투갈이 재정 긴축 철회 문제로 채권단과 갈등을 빚고 있는 그리스의 전철을 따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유럽팀장은 “그리스와 채권단의 구제금융 협상안이 부결돼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현실화하면 과거 PIIGS 국가들이 가장 큰 타격을 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면서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한 아일랜드와 스페인 등 일부 국가는 분리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정/나수지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