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신규 면세점 선정 결과가 늦어도 이달 중순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출사표를 낸 기업들의 유치전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지난달 1일 각 업체는 면세점 청사진을 공식 '사업계획서' 형태로 제출했고, 관세청도 이미 서류 심사와 현장 실사를 마쳐 이제 기업별 프레젠테이션(발표) 절차만 남았다.

사실상 최종 결정 단계에 접어든 셈이다.

이에따라 각 업체는 승부가 결정되기 직전까지 면세점과 관광산업에 대한 역량과 의지를 최대한 드러내고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막판 안간힘을 쓰고 있다.

◇ HDC신라, 이부진 제주·베이징 강행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내외를 넘나드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적극적 대외 활동이다.

호텔신라는 현대산업개발과 함께 합작법인 HDC신라를 설립하고 이번 서울 면세점 신규 특허 유치전에 뛰어든 상태다.

이 사장은 지난달 29일 늦은 오후 중국 베이징으로 날아가 30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께까지 장장 8시간 동안 쉬지 않고 '한국 관광 유치' 활동을 펼쳤다.

중국 최대 여행사 CTS 총재, 국영 여행사 CYTS 부총재, 국가여유국(國家旅游局), 외교부(外交部) 관계자를 잇따라 만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진정되고 있으니 중국 여행객의 한국 방문을 늘려달라"고 호소했다.

이 사장의 이런 행보는 HDC신라면세점이 내세우는 '새로운 관광 수요를 창출, 한국 관광산업에 기여하는 면세점'이라는 명분에도 부합한다는 것이 호텔 신라의 설명이다.

앞서 이 사장은 메르스 환자의 제주 신라호텔 투숙 사실이 알려지자 곧바로 제주 현장으로 내려가 지난달 18일 영업 중단 조치를 취하고 26일까지 머물며 위기를 수습하는 리더십을 보이기도 했다.

호텔신라 측은 이 같은 이 사장의 최근 행보와 면세점 유치전을 직접 연결짓는 걸 부담스러워하지만 공교롭게도 면세점 신규 특허 신청을 전후로 이 사장의 대외 활동이 눈에 띄게 활발해진 게 사실이다.

이번 출장에는 HDC신라면세점 공동대표인 양창훈 아이파크몰 사장과 한인규 호텔신라 부사장도 동행했다.

이 때문에 다른 후보들은 이 사장의 제주·베이징 강행군이 관세청의 신규 면세점 선정에 영향을 미칠까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아울러 HDC신라면세점은 오는 2일 면세점 후보지인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대한민국 관광산업 비전 선포식'을 열고 다시 한번 '관광 수요 창출'이라는 면세점 진출 명분을 강조할 계획이다.

광역·기초 자치단체장, 정계인사, 기업인, 상인 등과 함께 '관광활성화를 위한 공조'를 다짐하는 이날 행사에도 이부진 사장은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함께 직접 참석한다.

이 사장과 정 회장은 선포식 초청장을 통해 "현대산업개발과 호텔신라가 비전 선포식을 열고 동북아 대표 글로벌 면세점을 향한 첫발걸음을 떼려 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막판 '분위기 굳히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 신세계 본점 앞 분수 리뉴얼…남대문시장에 15억 지원
또 다른 유력 후보인 신세계는 남대문시장 등 주변 상권 부흥과 중소기업과의 상생 등에 유치 전략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달 30일 신세계는 서울 중구청과 함께 내년 하반기까지 본점 앞 분수대를 새로 단장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신세계 본점 명품관, 옛 SC제일은행 건물, 한국은행 화폐 박물관 등 유서 깊은 근대건축물로 둘러싸인 분수대를 로마 '트레비 분수', 시카고 '버킹엄 분수', 싱가포르 '부의 분수'와 같은 관광 명소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분수대를 명동과 남대문을 잇는 통로로 만들어 명동 근처에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소외된 남대문 지역의 관광을 촉진하겠다는 구상이다.

본점 명품관을 면세점 자리로 점찍은 신세계로선 결국 본점 주변의 관광자원 개발이 곧 면세점 영업 실적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분수대 리뉴얼 비용을 대는 건 일종의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신세계는 앞서 지난달 24일 남대문시장 옆 메사빌딩 10층의 530석 규모 팝콘홀을 한류공연장으로 꾸미고, 남대문시장에 3년간 기금 15억원을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 기금은 남대문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관광안내, 편의시설 개선, 외국인 유치 홍보·마케팅 등에 쓰인다.

이번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경우, 현재 연간 360만명 수준인 남대문시장 외국인 방문객 수가 700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신세계는 기대하고 있다.

장재영 신세계백화점 대표는 "남대문시장은 신세계백화점과 인연이 남달라 상생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장 대표는 메사빌딩에서 김재용 남대문시장상인회장, 한정화 중기청장, 박원순 서울시장, 최창식 중구청장 등과 함께 남대문시장을 글로벌 명품시장으로 육성하자는 취지의 협약을 체결했다.

◇ 이랜드 '중국', 한화 '한강'에 공들여
이랜드는 면세점 진출을 앞두고 가장 큰 고객인 중국에 남다른 정성을 쏟고 있다.

현지법인 중국이랜드는 지난달 21일 중국장애인기금회와 함께 기념식을 열고 '이랜드 장애인 전용 기금'을 설립했다.

중국이랜드는 앞으로 5년동안 이 기금에 108억원(6천만원 위안)을 기부할 예정이다.

이랜드 관계자는 "중국이랜드가 지난 2002년부터 진행해온 의족지원 사업을 확대한 것"이라며 "중국 기업, 현지 외자 기업들이 운영하는 장애인 지원 단일 기금 가운데 가장 큰 규모"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4월 이랜드그룹은 중국인 관광객(유커) 유치 차원에서 중국 완다그룹 여행사와 업무협약(MOU)도 체결했다.

중국 전역에 11개 지사를 둔 완다그룹을 통해 한 해 중국 VIP 관광객 100만명을 유치할 계획이다.

이랜드 관계자는 "국내 시내 면세점 매출의 70% 이상을 유커가 차지하는 만큼 이랜드그룹의 중국에서의 영향력은 큰 강점"이라며 "중국이랜드 고객 1천만명과 협력유통사 고객 1억명의 빅데이터를 활용,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고 '중국통'으로서의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랜드는 지난달 26일 마포구청과 '마포구 관광 문화 산업 발전 및 서울 시내면세점 마포구 유치를 위한 협약'을 체결하는 등 면세사업과 관련, 국내에서도 지역 사회와 긴밀한 공조에 나섰다.

여의도 63빌딩에 면세점을 차리겠다는 한화는 한강 주변 관광자원 발굴에 한창이다.

한화그룹은 지난 2000년 이후 사회공헌활동의 하나로 여의도에서 '서울세계불꽃축제'를 진행하는데, 한국콘텐츠진흥원 등과 협업을 통해 이 행사의 콘텐츠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축제 당일 낮 시간부터 K-POP 콘서트, 비보이 공연, 미디어파사드 공연 등을 덧붙여 '서울의 대표적 볼거리'로 행사를 키우겠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도 한화는 한강유람선 프로그램, 노량진수산 시장 투어, 한류스타 초청 콘서트, 여의도 봄꽃 축제, 에코·힐링 투어, 종합병원과 연계한 의료관광 등 13개의 신규 관광 프로그램을 통해 여의도 63빌딩 인근 관광 자원을 적극 개발할 계획이다.

대기업 면세점 후보들만 마지막 스퍼트에 나선 것은 아니다.

딱 한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인 중소·중견 기업들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뛰고 있다.

한류스타 배용준씨 소속사 ㈜키이스트가 주주로 참여한 서울면세점은 지난 24일 베이징(北京) 중국면세점그룹유한공사(CDF) 본사에서 CDF가 운영하는 200개 이상 면세점에 한국 상품을 공급하기로 합의했다.

CDF 계열사 중국국제여행사(CITS)도 서울면세점이 신규 면세점 운영주체로 선정되면 면세점 고객 유치를 최대한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이처럼 후보 기업들이 너도나도 우수 중소기업 상품의 해외 판로 지원을 강조하는 것은, 면세점 선정 기준 가운데 '상생 협력' 부문의 배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shk99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