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돌파] 상윤엽 루미피플 사장, 연줄 없는 멕시코서 사람장사 "15년간 1만명 취업 다리놨죠"
멕시코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은 현지에서 무조건 일본 업체의 서비스를 받으려고 한다. 현지 일본 은행과 거래하고 일본 로펌과 일한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인사관리 업무는 루미피플이라는 한국 업체에 맡긴다. 멕시코에 있는 일본 인력 컨설팅업체뿐 아니라 글로벌 헤드헌팅 기업보다 훨씬 낫다고 보기 때문이다.

틈새 시장 공략이 성공 비결

[한계돌파] 상윤엽 루미피플 사장, 연줄 없는 멕시코서 사람장사 "15년간 1만명 취업 다리놨죠"
루미피플은 인사업무를 대행하는 종합 인력 컨설팅업체다. 임직원 채용과 인사·노무관리 등을 대신해준다.

멕시코에선 이런 업체가 부지기수다. 까다로운 고용환경 때문이다. 멕시코에선 채용은 맘대로 하지만 직원을 내보내는 건 어렵다. 해고하려면 복잡하고 기나긴 소송을 감수해야 한다. 때문에 멕시코에 진출하는 해외 업체는 인력관리 업무를 아웃소싱하는 경우가 많다. 맨파워나 마이클페이지 같은 글로벌 인력 컨설팅업체들이 일찌감치 멕시코에 진출한 이유다.

루미피플은 2000년 이 시장에 진출했다. 후발 주자였다. 처음부터 맨파워 같은 대형 업체와 경쟁하기엔 버거웠다. 상윤엽 루미피플 사장은 틈새를 노렸다. 한국과 일본 기업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현지에 진출한 일본 기업 관계자들은 영어나 스페인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상 사장은 그 점을 노렸다. 일본어에 능숙한 직원을 많이 뽑았다. 상 사장은 “한·일 관계가 좋지 않다지만 멕시코에선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동질감을 느끼는 편”이라며 “최대한 공감대를 파고드는 전략을 구사했다”고 말했다. 루미피플은 이런 ‘공감대 마케팅’으로 미쓰비시, 혼다, 후지타 같은 일본 유수 대기업을 단골로 확보했다. 삼성전자와 기아자동차, LG전자, 포스코 등 한국 기업도 독점하다시피 했다.

[한계돌파] 상윤엽 루미피플 사장, 연줄 없는 멕시코서 사람장사 "15년간 1만명 취업 다리놨죠"
루미피플 매출은 2012년 2000만달러에서 지난해 3000만달러로 2년 만에 50% 성장했다. 올해엔 기아차와 혼다, 마쓰다가 추가로 대형 계약을 요청하면서 연매출 4000만달러 돌파를 앞두고 있다. 2000년 5명이던 직원 수도 어느덧 80여명으로 늘었다. 멕시코에 본사를 둔 토종 인력관리 컨설팅업체 중에선 가장 많다. 15년간 기업에 소개해준 사람만 1만명이 넘는다.

영어교사와 삼성맨 거쳐 창업

상 사장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86년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다. 중남미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크다고 판단해 대학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했다. 1992년 대학 졸업 후 아르헨티나 중학교에서 1년간 영어를 가르치다 문득 더 큰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기업들이 중남미에 진출한다고 보고 1993년 삼성전자 아르헨티나 법인에 입사했다. 이후 7년간 삼성전자에서 일하며 국가 간 문화 차이를 좁히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

상 사장은 “한국 기업이 중남미 문화와 현지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오해받는 일을 많이 봤다”며 “한국을 비롯한 해외 기업에 중남미 인력을 소개해주고 교육하는 인력 컨설팅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설명했다.

창업 국가는 멕시코를 택했다. 1999년 무작정 멕시코로 건너가 2000년 루미피플을 설립했다. 멕시코에 연줄도 없고 스페인어를 쓴다는 사실 외에 아는 게 거의 없었지만 글로벌 국가로 성장할 것이라는 잠재력만 믿었다. 멕시코는 1968년 올림픽을 개최했고 1970년과 1986년에 잇따라 월드컵을 유치했다. 1994년 미국 캐나다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었다.

상 사장은 한 번 물꼬가 터지면 멕시코에 해외 기업이 물밀듯이 들어올 것으로 생각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2010년 이후 멕시코는 중남미 최대 생산기지로 부상했다. 디스플레이 수출 세계 1위, 자동차 생산량 세계 7위에 올랐다. 전체 수출량의 80%를 미국에 수출해 미국 진출의 교두보로 자리 잡았다.

상 사장은 다른 나라와 멕시코의 가교를 자신의 역할로 삼고 있다. 영어와 스페인어, 한국어를 자유롭게 할 줄 아는 점을 활용해 이질적인 문화와 가치관을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예를 들어 한국 기업은 눈치를 중시한다. 회사 상황이나 상사의 성향을 잘 파악해 처신하는 직원을 우대한다. 반면 멕시코는 문서와 매뉴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지레짐작해 판단하기보다 상사가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길 원한다. 한국엔 위계질서 문화가 있다. 반면 멕시코는 직장 내에서도 모두가 본질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다. 상 사장은 “한국 기업들은 멕시코인의 가치관과 행동을 일방적으로 바꾸기를 강요하지 말고 멕시코에 동화되려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쿠바 개방으로 큰 시장 열려

상 사장은 한국보다 멕시코에서 인력 컨설팅업을 하는 게 훨씬 쉽다고 생각한다. 한국엔 우수인력이 줄을 서 기업이 힘들이지 않고 ‘구미’에 맞는 인재를 채용할 수 있지만 멕시코에선 그렇지 않아서다. 해외 선진 기업들은 멕시코에 들어와 적절한 인력을 바로 찾을 수 없어 채용 후 근로자를 일정 기간 교육해야 한다. 이때 현지 근로자의 특성을 가장 잘 아는 컨설팅업체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2010년 이후 멕시코 인력 컨설팅시장은 활황이었다. 상 사장은 앞으로 5년은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는 조만간 ‘쿠바 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한다. 철옹성 같은 쿠바의 빗장이 풀리고 있어서다. 올해 미국과 쿠바는 54년 만에 국교를 정상화했다. 유럽과 중국, 일본도 쿠바 투자를 늘리려 하고 있다. 상 사장은 쿠바에 돈이 풀리면 멕시코 이상으로 많은 기회가 생길 것으로 판단한다.

쿠바는 시장 개방에 대비해 도로와 항만 시설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멕시코만에 매장된 수십억 배럴의 석유도 개발될 가능성이 크다. 상 사장은 “쿠바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처럼 고속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건설업의 전망이 좋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 상윤엽 사장은…

1966년 대구 출생
1986년 아르헨티나로이민
1992년 아르헨티나서영어교사
1993년 삼성전자 현지법인 입사
2000년 멕시코서루미피플 설립

멕시코시티=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