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유라시아 친선특급 2015' 대장정

정·재계, 학계, 문화계 인사와 대학생 등 250여명이 열차로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유라시아 친선특급 2015' 행사가 다음달 14일부터 19박20일 일정으로 진행된다.

유럽과 아시아 간의 교통·물류 네트워크 구축으로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통일의 초석을 닦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일환이다.

12일 외교부와 코레일 등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항공편으로 이동한 뒤 전세열차를 타고 종착지인 독일 베를린까지 1만1천900㎞를 달리게 된다.

베를린에서는 한반도 분단 70주년과 독일 통일 25주년을 기념한 베를린 장벽 행진, 통일기원 문화공연, 통일 대토론회 등이 예정돼 있다.

사실 '유라시아 친선특급'이 이름값을 하려면 부산발 열차를 타고 북한과 러시아를 거쳐 곧바로 유럽까지 갈 수 있어야 한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핵심 구상인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가 구축되면 그런 꿈같은 여행이 가능해진다.

SRX는 한반도종단철도(TKR)를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결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2013년 10월 제안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유라시아 국가 간의 협력을 통해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의 기반을 만들고, 북한의 개방을 유도함으로써 한반도 통일의 기반을 구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박 대통령은 이를 위해 부산-북한-러시아-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관통하는 SRX를 실현하고, 전력·가스·송유관 등 에너지 네트워크도 구축하자고 역설했다.

우리 정부는 우선 2008년 12월 중단된 남북한 화물열차 운행을 재개하고 북한 내 철도 개·보수를 지원해 SRX 실현의 토대를 쌓아 간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SRX는 남북한을 잇는 TKR을 전제로 하는 개념인데, 아쉽게도 현재 남북을 관통하는 3대 철도망(경의선, 경원선, 동해선)은 모두 군사분계선에 막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러 합작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한국의 참여가 추진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 사업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 화물을 북한 나진항으로 끌어들여 TSR로 유럽까지 운송하려는 복합 물류·운송 프로젝트다.

TSR과 TKR의 연결이라는 장기 프로젝트의 시범 사업이자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첫 사업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는 이 사업을 천안함 사건 이후 취해진 5·24 대북제재 조치의 예외로 규정하고 적극 지원 중이다.

러시아와 북한은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위해 2008년 7대 3의 지분 구조로 합작회사 '라손콘트란스'를 설립했다.

러시아 측은 이후 하산과 나진항을 잇는 54km 구간 철도 개보수에 착수해 2013년 9월 공사를 마치고 열차 운행을 시작했다.

개보수된 나진-하산 철도에는 러시아식 광궤(1천520㎜)와 한반도식 표준궤(1천435㎜) 선로가 나란히 깔려 이전까지 시속 30~40km밖에 내지 못하던 열차가 시속 60~70km로 달릴 수 있게 됐다.

러시아는 향후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 지역 국가들의 유럽행 수출 화물을 나진항으로 끌어들여 나진-하산 구간 철도와 TSR을 이용해 유럽까지 운송하는 물류 사업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박 대통령은 2013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들을 참여시키기로 합의했다.

포스코, 현대상선, 코레일 등 3사로 구성된 우리 기업 컨소시엄은 라손콘트란스의 러시아 지분 49%를 인수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우리 측 컨소시엄은 지난해 2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나진-하산 구간 철도와 나진항 부두 시설 등을 둘러보며 타당성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SRX와 관련된 최근의 상황이 별로 희망적이지 않다.

남북 간의 대치국면이 장기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제43차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장관회의에서는 한국의 정회원 가입안이 의제로 상정됐지만 북한의 반대로 통과되지 않았다.

신입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정회원인 28개국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북한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OSJD는 러시아, 중국, 북한을 비롯해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철도협력기구로, TKR과 유라시아 횡단철도의 연계를 위해서는 가입이 필수적이다.

OSJD는 철도운행에 있어서 교통신호부터 운행방식, 표준기술, 통행료 등 모든 요소에 통일된 규약을 제시한다.

물론 이번 OSJD 회의에서 성과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러시아를 비롯해 폴란드, 몰도바,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체코, 카자흐스탄 등이 한국의 가입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고 중국은 지지도, 반대도 아닌 기권 의사를 밝혔다.

따라서 경색된 남북관계가 풀리면서 TKR 구축 논의가 본격화된다면 부산발 유럽행 열차도 언젠가는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알렉산드르 갈루슈카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서울을 방문한 자리에서 러시아가 TSR과 TKR 연결 사업에 150억 달러(약 17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서울연합뉴스) 정규득 기자 wolf85@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