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정국 불안정…리라화 가치 사상 최저
터키의 집권 여당인 정의개발당(AKP)이 13년 만에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1년 AKP를 창당한 이후 일곱 차례의 선거에서 모두 승리하며 ‘선거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독재정치와 부패에 대한 비난이 커지고 경제성장률 저하, 쿠르드계의 부상까지 겹치면서 패배를 맛봤다.

터키 반관영 통신사인 아나돌루는 7일(현지시간) 치러진 터키 총선거에서 AKP가 전체 유효표 4455만표 가운데 40.7%를 얻었다고 8일 보도했다. 전체 550석 중 AKP의 의석 수는 기존 327석에서 과반(276석)에 못 미치는 258석으로 줄어들게 됐다.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은 25.2%의 득표율을 기록해 132석을 얻었다. 민족주의행동당(MHP)과 인민민주당(HDP)은 각각 16.5%와 13.0%의 득표율로 81석과 79석을 확보했다.

AKP가 과반의석을 차지하는 데 실패한 결정적 이유는 쿠르드계 정당 HDP의 급부상 때문이다. 터키는 지역대표를 뽑지 않고 비례대표로만 의원을 뽑으며 전국 득표율이 10% 이상인 정당에만 의석을 배분한다. 10% 미만의 득표율을 기록한 정당의 표는 1위 정당의 표로 계산한다. 터키 인구에서 약 20%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은 이번 선거에서 처음으로 정당을 전면에 내세워 도전했고 가볍게 ‘10% 득표율’을 넘어섰다.

현지 언론은 만약 HDP가 과거처럼 무소속으로 출마해 입당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AKP가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고 분석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르드족에 우호적인 정책을 펴왔지만 직접 자기 목소리를 내겠다는 쿠르드족이 꾸준히 늘어났다. 지난 5일에는 쿠르드족의 수도 격인 동부 디야르바크르의 HDP 유세 현장에서 폭탄이 터져 2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 HDP에 표가 결집됐다.

2002년부터 단독으로 정부를 이끌어왔던 AKP가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할 처지에 몰린 것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력욕과 부패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은 “에르도안 대통령은 독재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의원내각제를 대통령 중심제로 바꿔 자신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왔다”며 “이에 대한 반감과 부정부패가 심해졌다는 비판이 높아지면서 집권당의 표를 깎아먹었다”고 평가했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총리를 맡았던 에르도안 대통령은 세 번 연속 당 대표를 할 수 없다는 당규 때문에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 나와 당선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해 6억1500만달러(약 6900억원)를 들여 자연보호구역 안에 대통령궁을 새로 짓는 등 예산 낭비, 불법건축과 관련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주춤한 경제성장도 에르도안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 대한 반감을 부추겼다. 터키 경제성장률은 2010년 9.2%를 기록했으나 지난해 2.9%로 하락했다. 실업률도 10%로 6년 만에 가장 높았다.

AKP가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하자 터키 리라화 가치는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 미국 달러당 터키 리라화 가치는 지난주 2.678리라 수준을 유지했으나 8일에는 장중 5% 급락한 2.807리라를 기록했다. AKP가 연립 정권을 구성하거나 이마저 여의치 않으면 조기총선까지 필요할 수 있어 정국이 불안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