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소·중견기업은 모두 어려움을 겪었다. 정부가 국제 경쟁력을 갖춘 국내 중소·중견기업을 발굴해 지원하는 ‘월드클래스300’ 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들 153개 기업은 특허출원과 고용을 계속 늘리고 있다.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또 일부 기업은 해외시장 개척에 뚜렷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한정화 중소기업청장은 “월드클래스300 사업을 통해 코나아이 등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성과를 냈다”며 “연구개발 지원을 더 늘리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2011년 시작된 이 사업의 성과를 점검하는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싣는다.

슈프리마 직원들이 경기 성남시 공장에서 수출용 지문인식 스캐너 장비를 조립하고 있다. 슈프리마 제공
슈프리마 직원들이 경기 성남시 공장에서 수출용 지문인식 스캐너 장비를 조립하고 있다. 슈프리마 제공
지문인식 장치 전문기업 슈프리마는 현재 29건의 특허를 출원해 놓고 있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7개가 해외 특허다. 지금까지 총 56건의 특허를 국내외에서 취득했다. 이를 기반으로 지난해 510억원어치 제품을 수출했다. 수출은 2013년에 비해 32% 늘었다. 월드클래스300 지원 대상에 선정돼 연구개발(R&D)자금을 지원받은 것이 큰 힘이 됐다. 슈프리마는 작년에만 9억원가량을 받았다.

◆4년간 1618억원 R&D 지원

정부의 강소기업 육성 프로젝트 ‘월드클래스300’에 선정된 기업들이 특허 등 지식재산권을 대량 확보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R&D 비용을 지원받아 특허를 취득한 것이 해외 수출 확대로 이어지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이 사업을 주관하는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에 따르면 월드클래스300에 뽑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R&D 자금을 지원받은 73개사의 특허출원 건수가 최근 3년간 636건에 달했다. 기업당 평균 5건의 특허를 출원한 셈이다. 또 이 기간 총 150건의 특허 등록이 이뤄졌다. 기업 스스로 투입하는 R&D 비용에 정부 지원이 더해진 덕분이다. 월드클래스300에 투입된 R&D 비용은 작년에만 631억원에 달했다. 사업 첫해인 2011년 153억원에서 네 배 이상 늘었다. 지난 4년간 총 1618억원이 투입됐다.

월드클래스300에 선정되려면 R&D에 매출의 2% 이상을 투자하거나 5년간 연평균 15% 이상 성장해야 한다. 지원 대상이 되면 연 15억원 한도 내에서 3~5년간 R&D 자금을 지원받는다. 글로벌 마케팅 자금과 시설 및 운영 자금, 전문인력 등의 다양한 지원도 이뤄진다.

◆해외 특허분쟁 대비

9억 지원받은 슈프리마, 특허 무장해 수출 76% ↑
정부가 R&D에 투입한 자금은 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슈프리마가 이런 사례다. 이 회사는 2011년 미국 시장에 무턱대고 진출했다 소송을 당했다. 현지 회사이자 경쟁사인 크로스매치가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투표할 때 지문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라이브스캐너’란 제품이 특허를 침해했다고 크로스매치 측은 주장했다. 미국에서 슈프리마 제품을 팔지 못하게 해달라고 소송을 낸 것이다. 이 소송에 대응하느라 슈프리마는 3~4년간 수십억원을 썼다.

현재 2심까지 끝난 소송에서 미국 법원은 슈프리마의 구형 일부 제품에 대해 특허침해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특허침해 인정 범위는 1심 때보다 크게 좁혀졌다. 구형 제품은 이미 신형 제품으로 대부분 바뀐 상태라 슈프리마의 영업에 타격이 크지 않았다. 소송 이슈가 마무리되자 슈프리마 ‘라이브스캐너’의 수출은 지난해 76% 급증했다. 신형 제품에 슈프리마가 확보한 특허를 적용한 덕분이다.

TV 셋톱박스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알티캐스트는 현재 해외 71건 등 모두 200개 특허를 출원했다. 이 중 161개는 특허등록을 완료했다. 3년간 매년 7억원씩 지원받은 R&D 자금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심규원 알티캐스트 이사는 “사실 수천개의 특허를 갖고 있어도 수출기업은 특허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정부가 인증한 월드클래스300 기업 타이틀이 있어 특허 이상으로 도움받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 선정된 뒤 줄곧 지원을 받아온 스마트카드업체 코나아이 측도 “중소·중견기업이 대규모 R&D 인력을 유지하는 데 정부 지원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나아이는 해외에 진출할 때 금융회사들로부터 일일이 인증을 받아야 해 비용이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비용의 일부를 정부에서 지원받아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