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도입위한 취업규칙 변경, 합리성 인정할 수 있어"
노동계 "일방적인 노동시장 구조개악"…춘투 예고

내년 60세 정년 연장을 앞두고 정부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정지작업에 나섰다.

정년 연장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진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줄이는 '청년 고용절벽'을 막기 위해서라도 임금피크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한 관련 취업규칙 지침도 내놓기로 했다.

반면, 노동계는 정부가 일방적인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 정부 "임금피크제 도입, 합리성 인정돼"…취업규칙 변경 길 열어
2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8일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리는 '임금체계 개편과 취업규칙 변경' 공청회에서 고용부 정지원 근로기준정책관은 '취업규칙 변경의 합리적 기준과 절차'를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다.

취업규칙은 채용, 인사, 해고 등과 관련된 사규를 말한다.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간주되는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 대표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는 임금피크제가 근로자에게 불이익이라고 간주해 노조가 반대하면 도입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다만, 취업규칙 변경을 노조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사회 통념에 비춰 그 합리성이 있으면 예외적으로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다.

고용부는 28일 공청회에서 이 판결을 적극 활용, 임금피크제가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되지 않으며 사회 통념에 비춰봐도 합리성이 있다는 입장을 내놓기로 했다.

고용부는 공청회 주제발표문에서 "임금체계 개편 의무를 규정한 고령자고용촉진법의 입법 취지와 정년 연장에 따른 기업의 인력채용 부담 등을 고려할 때, 임금피크제 도입 등 임금체계를 개편할 고도의 필요성이 일반적으로 인정된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년연장으로 사실상 고용기간 연장이라는 이익을 얻은 점을 감안할 때, 기존 정년시점 이후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감액이 보편적 수준이라면 근로자가 입게 되는 불이익 정도가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사용자가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 상당한 협의 노력을 했으나, 노조가 대안 제시도 없이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등 동의 권한을 남용할 경우에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실제 정년은 보장하지 않으면서 임금만 낮추려는 경우나 기존 정년시점 이전 임금 감액분이 정년연장에 따른 수익보다 클 경우에는 근로자의 불이익이 크다고 판단했다.

고용부는 이날 발표문에서 직무 전환과 직무성과급 도입 등의 임금체계 개편도 다뤘다.

고용부는 "정년 60세에 따라 고령자 적합 업무 등 다른 업무로 전환을 규정한 경우, 단순히 임금 삭감 목적으로 새로운 직군이나 직무를 신설해 일률적으로 배치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면 불이익 변경으로 단정 짓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사업주가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를 도입하는 것은 사용자의 경영 판단에 관한 사항으로 인력 운용의 효율성 및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 자체로는 원칙적으로 근로조건의 불이익 변경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임금체계를 변경할 때 단지 그 산정방식을 변경해 사실상 임금을 획일적으로 낮추는 등 기존 근로조건의 저하를 초래할 경우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청회에서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년 60세 안착을 위한 합리적 임금피크제 도입의 필요성 그 방안'을 발표한다.

이 교수는 발표문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은 근로자들이 도입 이전에 받은 생애 총임금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근로자들의 입장에서 정년 연장으로 5년 더 기업을 위해 일하는데, 이에 대한 보상이 없는 임금피크제 도입에 동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정년 연장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해 그 재원으로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정부의 임금피크제 지원금 등을 적극 활용해 정년 연장 근로자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년 연장 근로자와 신입 사원의 임금 격차가 3배이면 정년 연장 근로자의 임금을 3분의 1 깎아 신입사원 1명을 채용할 수 있지만, 임금 격차가 2배이면 임금을 절반이나 깎아야 해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노동계 "일방적인 노동시장 개악"…공청회 봉쇄 이어 춘투로 이어질 듯
노동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대규모 희망퇴직 등으로 현행 58세 정년마저 누리는 노동자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임금피크제마저 도입하면, 노동자는 임금 삭감의 고통만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60세 정년연장을 얘기하지만, 대부분 50세 안팎에 퇴직해 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현실"이라며 "그나마 직장에 남은 노동자들의 임금마저 깎게 될 임금피크제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더구나, 임금피크제와 관련 없는 직무 전환, 직무성과급 도입 등을 공청회에서 다루려는 것은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대화는 지난달 한국노총이 결렬을 선언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는 공청회라는 요식 행위로 노동시장 구조개악 강행 추진을 위한 억지 명분 마련에 나서고 있다"며 "이번 공청회는 사용자들을 위한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구색을 갖추려는 보여주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28일 공청회에 불참하는 것은 물론 공청회를 원천 봉쇄해 개최 자체를 무산시키겠다는 방침이다.

나아가 정부가 취업규칙 변경 등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강행할 경우 다음 달부터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한국노총은 다음 달 총파업 찬반투표를 해 7월 초 총파업을 벌일 예정이다.

민주노총도 6월 말이나 7월 초 대규모 총파업집회를 하기로 했다.

두 노총의 연대 투쟁도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어 춘투가 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ss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