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소송가액만 약 5조원에 달하는 론스타펀드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소송(ISD)의 첫 심리가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서 열린다. ISD는 1987년 애플 홍콩법인이 스리랑카 정부를 상대로 낸 것을 시작으로 주로 선진국 투자자들이 개발도상국 정부를 제소해왔다.

한국 정부가 ISD에 휘말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결과가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은 만큼 정부는 국무조정실 주도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세금 회피를 위해 벨기에 등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뒤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는 소송 주체도 페이퍼컴퍼니를 내세운 것으로 알려져 정부는 이 점을 집중 공략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의 첫 ISD 사건

론스타가 ICSID에 중재를 신청한 것은 2012년 11월21일이다. 신청인(원고)은 LSF-KEB홀딩스, 스타홀딩스 등 8곳이다. 이들 법인의 근거지는 룩셈부르크 한 곳, 나머지는 벨기에다. 뚜렷한 실체가 없는 페이퍼컴퍼니 형태의 특수목적법인(SPC)을 상대로 한국 정부가 싸워야 한다는 얘기다. 사건번호는 ‘ARB/12/37’. 2012년에 제기된 37번째 중재 사건을 뜻한다. 2013년 5월10일 한국 정부와 론스타가 추천한 중재인을 포함해 모두 3명으로 중재 재판부가 구성됐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전광우·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등 정부와 금융계 전직 고위 인사 26명이 증인 신문에 대거 참여한다.
'유령회사'로 세금 회피한 론스타…소송 주체도 '유령회사'
론스타는 두 가지 이유로 한국 정부에 46억7900만달러(약 5조1000억원)를 청구했다. 첫 번째는 한국 정부가 HSBC에 외환은행을 매각하려던 론스타펀드의 계획을 고의로 지연시켜 피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론스타는 이 때문에 HSBC와 매각 협상을 벌일 때보다 훨씬 싼 3조9157억원에 외환은행을 하나은행에 팔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 쟁점은 과세 문제다. 외환은행 등의 매각 과정에서 발생한 양도차익에 세금을 부과한 국세청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것이 론스타의 주장이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매각한 주체가 벨기에·룩셈부르크 법인으로 ‘한-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협정’에 이중과세 금지 조항이 있는 만큼 한국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론스타 자회사들이 실체 없는 ‘유령회사’로 투자협정으로 보호할 대상이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투자자보다 정부 승률 조금 높아

최대 관심사는 중재 결과다. 과세 부문에 대한 심리는 오는 6월29일 열릴 예정이어서 일러야 내년 상반기에 결론이 나온다.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1987~2007년 판정이 내려진 119건 가운데 40건은 투자자가, 42건은 정부가 승소했다. 37건은 쌍방 합의로 끝났다. 정부 측 승률이 35%에 불과하다.

하지만 2010~2012년 ICSID에 회부된 중재 신청의 결과는 정부 쪽에 유리하게 나오고 있다. ISID에 올라온 90건 중 결론이 난 사례는 22건이다. 이 가운데 정부가 승소한 건이 12개고, 투자자 승소는 2건에 불과하다. 결론이 난 사례들만 놓고 보면 승소율이 54%로 올라간다. 임병덕 법무법인 한별 고문은 “영미법상 국제중재재판에 에스토펠(禁反言·말바꾸기 금지)이라는 실체법상의 원칙이 광범위하게 적용된다는 점이 한국 정부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장애물일 것”이라고 말했다.

■ 투자자-국가소송(ISD)

investor-state dispute. 기업, 사모펀드 등 투자자가 투자 유치국 정부의 계약 위반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제3의 기관에 권리 보호를 요청하는 민간중재제도. 다른 국제중재 분야로는 상업·해양·지식재산권 분쟁이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