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기업, 연구개발·마케팅 투자로 경쟁력 회복
무역전문가 "엔저 충격파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다"

엔저(엔화가치 하락) 현상에 대한 경고음이 산업계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당장 자동차, 조선, 철강 등의 수출 실적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올해 1분기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기아자동차의 점유율은 7.8%에서 7.9%로 소폭 상승했으나, 13.9%에서 14.6%로 뛴 일본 도요타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조선 시장에서는 엔저를 앞세운 일본 업체들이 지난 1월 7년 만에 선박 수주량 1위 자리를 탈환하면서 한국 업체들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장기 부진에 빠졌던 일본 수출 산업 전체가 엔저를 등에 업고 체력과 경쟁력을 회복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을 위협할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코트라(KOTRA)가 지난달 해외무역관을 통해 조사한 2분기 한국의 수출선행지수는 전분기보다 3.5포인트 하락한 48.5를 기록했다.

수출선행지수가 비관적인 전망을 의미하는 50 미만으로 떨어진 것은 지수 산정을 시작한 2009년 이후 6년 만에 처음이다.

1분기 한국의 수출과 수입은 모두 뒷걸음질을 쳤다.

수출액은 2.8% 감소했으며, 수입액은 15.3% 급감했다.

이 같은 부진의 주 원인으로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유가 하락이 꼽힌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이 세계 교역 구조와 시장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제품 경쟁력이 갈수록 저하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일본 기업들은 장기화되는 엔저 현상을 십분 활용해 수출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자동차 등 당장 판매 가격을 인하하며 공세를 강화하는 분야도 있으나 연구개발(R&D)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기업들이 더 많다는 분석이다.

소니는 지난 2월 나가사키 테크놀로지센터 등 대상으로 1천50억 엔 규모의 설비투자 계획을 내놨으며, 캐논은 3천337억 엔을 들여 스웨덴의 네트워크 비디오 전문기업 엑시스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생산 거점을 일본으로 이전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지난달 일본 145개 주요 상장기업 경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엔저와 미국 경제회복을 근거로 일본 경기가 회복기에 들어선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작년 12월보다 경기회복을 확신하는 응답자 비율이 배로 늘었다.

모두 엔저 덕분이다.

실적이 호전되고 국내 생산 여건이 유리해졌기 때문이다.

엔·달러 환율은 2차 아베 내각의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으로 2012년 12월 달러당 82엔에서 현재 120엔 수준으로 상승했다.

28일 원·엔 환율은 장중 100엔당 900원 선이 무너졌다.

원·엔 환율이 장중 800원대로 떨어진 것은 7년 2개월 만으로, 당분간 800원대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엔저로 인한 일본 수출산업의 부흥으로 가장 타격을 입는 것은 일본 업체들과 세계 시장 곳곳에서 치열한 각축을 벌이는 한국 기업들이다.

고착화될 조짐을 보이는 엔저 현상에 대한 보다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승관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일본 수출 기업 중 상당수가 엔저로 늘어난 이익을 연구개발과 마케팅에 쏟아붓고 있다"며 "엔저의 충격파는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abullapi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