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발 넓히는 은행] "40년 내수기업 오명 벗겠다"…은행들 해외진출 역대 최대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올해 초 서울 중구 본점 22층 집무실에 대형 세계지도를 걸었다.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할 정도로 큰 지도다. 여기엔 우리은행이 작년 말 인수한 인도네시아 소다라은행 지점을 포함한 185개 해외 지점 및 사무소가 빼곡히 표시돼 있다. 저수익 구조가 고착화되는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이 행장의 강한 의지가 지도에 담겨 있다는 게 은행 측 설명이다. 우리은행은 올해 25곳의 해외 지점을 더 늘릴 계획이다.

최근까지 내수 기업으로 조롱받던 은행들이 앞다퉈 해외로 나가고 있다. 올해 우리·신한·하나·외환 등 4개 은행이 새로 만드는 해외 지점만 45곳에 이르고 다른 은행들을 합하면 50곳을 훌쩍 넘을 전망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해외 지점을 내기 시작한 국내 은행들의 한 해 신규 해외지점 개설 수로는 최대 규모다.
[해외로 발 넓히는 은행] "40년 내수기업 오명 벗겠다"…은행들 해외진출 역대 최대
○해외로…해외로…

지난 2월 말 기준 국내 시중은행의 지점과 사무소, 출장소를 합한 해외 점포는 443곳이다. 4대 시중은행의 국내 점포가 각각 1000여개 안팎인 걸 감안하면 여전히 적은 숫자다. 그동안 해외 진출 실적도 그리 좋지 않았다. 국내 자산 1위 은행인 국민은행의 전체 당기순이익 중 해외부문 비중은 지난해 기준으로 1.9%에 불과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매년 해외 비중을 늘려왔지만 총 당기순이익 중 해외사업 비중이 작년 각각 8.7%와 6.3%로 국내 부문에 한참 못 미쳤다. 이 때문에 그동안 은행들은 비좁은 국내에 안주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처음 연 1%대로 낮추면서 예금과 대출이자 차이인 예대마진이 2% 미만으로 떨어지는 등 저수익 구조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은행마다 공격적인 해외 진출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우리은행이다. 작년 말 인도네시아 소다라은행을 합병해 일거에 119개 해외 점포를 늘린 데 이어 올해 7개국에 25개 점포를 확충할 계획이다. 신한은행도 올해 7~10개 지점을 새로 만든다. 하나·외환은행도 올해 인도네시아 캐나다 멕시코에 10개 지점을 새로 열고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설 계획이다. 농협·국민·기업은행 등도 올해 인도와 중국 상하이 등에 지점을 새로 낸다.

○동남아 등 신흥시장 ‘집중’

은행들이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는 것은 국내 시장에선 수익성 지표가 계속 악화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은행의 핵심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작년 말 기준 1% 중·후반대로 떨어졌다. 신한은행의 NIM은 작년 1분기 1.77%에서 4분기 1.67%로 하락했다. 우리은행도 같은 기간 NIM이 1.68%에서 1.51%로 뚝 떨어졌다. 100억원을 1년간 대출 등으로 운용해 얻는 순이익이 1억5000만원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은행 간 과당경쟁으로 국내에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가 힘들다. 주요 은행들이 수익성 악화에 맞춰 지점 통·폐합을 추진했는데도 국내 은행 점포 숫자만 8000여개에 육박한다.

반면 해외에선 아직 수익창출의 기회가 많다. 특히 동남아 신흥국에선 5%대의 수익률도 올릴 수 있다. 경제성장률이 높아 대출이자 등을 국내보다 4~5배가량 더 받을 수 있어서다. 베트남 등에선 예대마진이 최대 4~5%대로 알려졌다.

주요 은행들은 이에 따라 올해 전체 수익에서 차지하는 해외 비중을 높여 잡고 있다. 신한은행은 작년 8.7%인 해외 당기순이익 비중을 올해 10%로 상향 조정했다. 우리은행도 6.3%인 해외 영업수익 비중을 올해 10% 가까이로 높일 계획이다. 한 시중은행장은 “수년 전만 해도 은행들은 국내 대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에 편승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은 미래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명/박신영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