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은행이 내놓은 ‘은퇴자 맞춤형’ 수신상품 금리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시장금리 하락세를 비켜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은퇴형 수신상품 금리가 기존 정기예금보다 오히려 낮아진 경우도 많다. 상품 구조 역시 기존 수신상품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은퇴자들로선 이들 상품에 가입해야 할 이유가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은퇴상품이 ‘유명무실화’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초저금리 못 비켜간 은퇴상품…연 1%대로 '뚝'
○금리 최대 1%포인트 하락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주요 은행이 내놓은 은퇴형 수신상품 금리가 기존 정기예금보다 낮거나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은행은 퇴직금 등 은퇴자금을 예치한 뒤 매월 원리금을 받아 쓸 수 있는 상품인 ‘우리청춘100세예금’ 금리를 지난달 23일 연 1.75%로 낮췄다.

이 상품 금리는 지난해 3월21일 연 2.6%였지만 1년 새 여덟 차례 금리가 내려가면서 0.85%포인트나 하락했다.

주력 정기예금 상품인 ‘유후정기예금’과 금리가 같다. 적금 기반의 은퇴 상품인 ‘우리청춘100세적금’ 금리는 같은 기간 연 2.8%에서 2.05%로 인하돼 연 2.2% 수준인 정기적금 금리보다 낮아졌다.

비슷한 상품 구조를 갖고 있는 신한은행의 ‘미래설계크레바스연금예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6월 출시된 이 상품은 당초 1년제 기준 연 2.2% 금리를 적용했지만 지금은 연 1.8%로 떨어졌다. 연 1.7%인 ‘신한S드림정기예금’과 금리가 비슷하다.

국민은행의 은퇴설계 상품인 ‘골든라이프예금’ 금리는 지난해 6월 말 연 2.3%에서 1.7%로 0.6%포인트 떨어졌고, 하나은행의 ‘행복노하우연금예금’은 지난해 11월 연 2.15%에서 1.8%로 하락했다.

○새로운 은퇴자 상품 나와야

은퇴설계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은행들은 앞다퉈 상품을 내놓고 경쟁을 벌여왔다.

경쟁 초기엔 기존 상품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해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우리청춘100세예금’의 지난달 말 기준 잔액은 4조3446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은행들이 적극 유치했던 은퇴형 상품들의 매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초(超)저금리 기조로 금리가 하락하면서 은퇴자나 은퇴를 앞둔 직장인이 상품에 가입할 이유가 줄어든 탓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은퇴 상품을 처음 출시할 때는 가입자를 모으기 위해 ‘특별판매’ 개념으로 금리를 높이기도 했지만 시장 금리가 더 떨어진 지금은 그럴 여지가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든 금리가 다 떨어지는데 은퇴상품이라고 피해갈 수 없으니 걱정”이라고 설명했다.

금리만 내세울 게 아니라 은퇴자들의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지금의 은퇴 상품들은 ‘은퇴자용 혁신상품’이라는 은행의 홍보와 달리 기존 정기예금 및 적금과 별 차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예컨대 은퇴형 연금예금은 기존 정기예금이 만기에 지급하던 원리금을 매월 지급하는 것으로 지급 시기만 바꾼 상품이란 지적이다. 은행 관계자는 “은퇴 상품이 기존 수신상품을 기초로 개발돼 아직 큰 차별점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