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걸 한샘 창업자의 '새 도전'] "대법관·장관 출신이 로펌 밖에 못가는 한국…국가 비전 누가 세우나"
“우리나라에서는 총리 대법관 장관을 지낸 고급 인재가 갈 곳이 로펌밖에 없다. 이들이 재충전하면서 국가 비전을 세우고 다시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연구소를 만들어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사진)이 재단법인 한샘드뷰를 국가적인 싱크탱크로 키우기 위해 재산 절반을 내놓겠다고 한 이유다. 그는 오래전부터 정부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이 로펌이나 회계법인으로 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인재들이 지닌 무형의 국가자산이 특수한 계층의 이익을 위해 쓰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세계의 급속한 변화 속에 이런 상황을 두고만 보고 있을 수 없다며 오랫동안 구상해온 싱크탱크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면 안돼

조 회장이 제시한 모델은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다. 성공한 기업가 로버트 브루킹스는 1차 세계대전 때 정부와 함께 일하면서 미국이 일류 국가로 도약하려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연구소와 숙련된 공무원 집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위기에 대비하고 중장기 국가전략을 짤 수 있는 싱크탱크가 필요하다는 발상이었다. 브루킹스는 사재를 출연해 1927년 현대적 싱크탱크의 모델인 브루킹스연구소를 설립했다.
[조창걸 한샘 창업자의 '새 도전'] "대법관·장관 출신이 로펌 밖에 못가는 한국…국가 비전 누가 세우나"
조 회장도 마찬가지다. 비닐하우스 공장에서 시작해 1조원대 중견기업을 일군 그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살아남으려면 인재가 갖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의 부상, 미국의 역할 축소, 일본의 급격한 변화를 그는 한국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이어 “한일강제병합, 6·25전쟁, 남북 분단이라는 한국의 비극이 미국과 일본의 이익으로 이어진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를 위해 한샘드뷰를 고급 인재의 재충전과 비전을 만들어내는 단체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다졌다. 대공황기 뉴딜정책과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재건 프로그램인 마셜플랜의 기초를 만들고, 2000년대 중반 사회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한 해밀턴프로젝트를 제안한 브루킹스와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미국에서는 대통령과 장관을 지낸 뒤 워싱턴DC 주변 연구소에서 재충전해 다시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많다”며 “연구소는 국가의 인프라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브루킹스 이후 수백개의 연구소가 세워진 것처럼 기업인들이 돈을 내 많은 연구소가 생기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경제 발전 등 국가전략 수립에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조창걸 한샘 창업자의 '새 도전'] "대법관·장관 출신이 로펌 밖에 못가는 한국…국가 비전 누가 세우나"
“새로운 문명을 연구하라”

조 회장은 한샘드뷰가 해야 할 네 가지 연구과제를 제시했다. 동서의 가치를 융합한 새로운 문명창조,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사고의 전환, 디지털 기술의 활용과 생활혁명, 중국의 격변과 동아시아 생활 방식의 창조 등이다.

이를 통해 찾고자 하는 것은 한국의 미래다. 그는 “미국이 경제력만으로 세계의 중심이 된 것은 아니다. 대중문화, 시장경제, 민주주의 등 다른 나라가 배우고자 하는 가치를 정착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구소가 장기적인 새로운 사회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전략도 제시했다. 그는 “현대 산업사회를 이끌어가는 핵심역량은 금융, 미디어, 대학 등과 할리우드로 상징되는 문화”라며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역량을 찾아내고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분야를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직 운영에 대해 조 회장은 “브루킹스재단은 알지만 설립자는 잘 모르는 것처럼 재단을 운영해야 한다”며 “초기에는 정책을 중심으로 재단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