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내는 '이재용 비즈니스'] '외부 수혈' 거부감 사라진 삼성…필요한 기업은 속전속결 인수
“기존 갤럭시에는 없던 ‘뭔가 새로운 것’을 넣어야 한다.”

지난해 9월 초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책임지는 무선사업부는 차기 전략폰인 갤럭시S6를 준비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당시는 전작인 갤럭시S5의 부진으로 회사 전체 실적이 곤두박질치던 때였다. 갤럭시S6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신종균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디자인 혁신과 함께 새롭게 떠오르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삼성페이)를 ‘비밀병기’로 정했다. 하지만 삼성에는 이렇다 할 모바일 결제 기술이 없었다. 무선사업부는 곧바로 외부로 눈을 돌렸다.

이때 시야에 들어온 업체가 2012년 설립된 미국 신생 모바일 서비스업체인 루프페이다. 삼성전자는 작년 말부터 루프페이 인수에 공을 들였고 갤럭시S6 공개를 보름가량 앞둔 지난달 18일 전격적으로 루프페이 인수를 발표했다. 루프페이와 접촉한 뒤 인수까지 걸린 시간이 3개월 남짓에 불과할 만큼 속전속결이었다.

인수금액도 작년 5월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 체제’ 이후 삼성의 인수합병(M&A) 금액 중 가장 많은 2000억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시간을 두고 밀고 당기기를 하면 충분히 인수가격을 낮출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인수 시점에 무게를 뒀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캐나다 프린터온, 브라질 심프레스 등 해외 프린팅 솔루션 업체를 잇따라 인수했다. 지난달 초 모나코에서 해외바이어들이 삼성전자 프린터를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는 최근 캐나다 프린터온, 브라질 심프레스 등 해외 프린팅 솔루션 업체를 잇따라 인수했다. 지난달 초 모나코에서 해외바이어들이 삼성전자 프린터를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루프페이뿐만이 아니다. 삼성은 지난해 8월 미국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업체인 스마트싱스를 인수할 때도 불과 6주 만에 거래를 마무리 지었다. 스마트싱스는 미국 정보기술(IT) 산업 본거지인 실리콘밸리가 아닌 동부 버지니아주에 본거지를 둔 회사다. 매출도 월 10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삼성은 이 업체를 사들이는 데 2000억원 가까운 돈을 썼다.

당시 업계에선 “삼성이 왜 스마트싱스를 사들이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꼬리를 이었다. 하지만 이런 의문은 삼성이 올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에서 IoT를 핵심 화두로 들고 나오면서 깨끗이 사라졌다. 삼성은 IoT 시대에 대비해 모든 삼성 제품을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한편 스마트싱스를 중심으로 개방형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삼성의 이 같은 행보는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삼성은 그동안 내부 역량을 통한 성장 전략에 집중했다. 핵심 기술은 대부분 자체 개발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M&A나 기술 제휴, 지분 투자 등 외부 기술에 과감히 눈을 돌리며 ‘개방형 혁신’에 나서고 있다. 이재용 체제 10개월간 공식 발표한 M&A만 8건에 달한다. M&A 분야도 기업 간 거래(B2B)나 소프트웨어·플랫폼 등 신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인수 금액은 아직 수백억원 수준의 ‘스몰딜’이 대부분이지만 루프페이나 스마트싱스처럼 베팅 규모를 늘리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기술 제휴도 적극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 블랙베리 등과 손 잡고 삼성폰과 태블릿에 이들 기업의 서비스를 적용하기로 했다. 지분 투자도 활발해졌다. 삼성벤처투자 등을 통해 최근 이스라엘 모바일 헬스케어 기업인 얼리센스와 비디오 채팅 앱을 만드는 라운즈에 각각 100억원가량을 투자한 게 대표적이다.

삼성의 이런 변화는 독자 기술만으론 발 빠른 혁신이 어렵다는 판단 외에 구글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의 움직임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삼성의 한 고위 임원은 “지난해 구글이 한 달에 한 개꼴로 M&A에 나서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털어놨다. 삼성은 최근 인수한 기업에 대해 간섭보다 자율을 중시하고 있다. 인수 기업 직원의 이탈을 막아 외부 기술을 최대한 흡수하려는 포석이다. 인수 기업의 경영진을 중용하는 이유다. 삼성은 지난달 정례 수요사장단 회의를 통해 그룹 차원에서 개방형 혁신의 중요성을 공유하기도 했다.

최승호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구글이나 애플처럼 삼성도 신기술을 신속하게 확보할 방법으로 M&A만한 게 없다고 보고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무조건 기업을 많이 인수한다고 좋은 건 아니고 인수 업체의 인력과 기술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