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이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CES) 기조연설자로 나서 사물인터넷(IoT)의 미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 사장은 “5년 내 모든 삼성 제품을 IoT로 연결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이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CES) 기조연설자로 나서 사물인터넷(IoT)의 미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 사장은 “5년 내 모든 삼성 제품을 IoT로 연결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속도 내는 '이재용 비즈니스'] "플랫폼 장악해야 최후 승자"…사업 모델 바꾸는 삼성
“이제 스마트폰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범용품’이다. 디자인 못지않게 플랫폼(비즈니스 생태계의 중심)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판매량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삼성전자가 올해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6(갤럭시S6엣지 포함)를 공개하기 직전, 갤럭시S6 개발 과정에 관여한 삼성의 고위 임원은 “갤럭시S6의 최대 승부처 중 하나는 플랫폼”이라고 단언했다. 갤럭시S6가 성공하려면 단순히 멋진 제품이 아니라 갤럭시S6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소비자가 수많은 스마트폰 중에서 삼성폰을 고를 이유가 없다는 게 삼성의 분석이다. “플랫폼을 장악해야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의미다.

세계 최강 하드웨어로 승부해온 삼성전자가 소프트웨어 경쟁력에 눈을 뜨고 있다. 삼성 스마트폰이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을 갖췄지만 실제 시장에선 고급 제품은 미국 애플에 밀리고 중저가폰은 중국 업체에 추격당하면서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소프트웨어 업체인 사이아노젠의 커트 맥마스터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삼성이 5년 안에 노키아처럼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삼성이 소프트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에 종속된 여러 ‘하청업체’ 중 하나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이 이달 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갤럭시S6를 공개하면서 디자인과 스펙(부품 사양) 못지 않게 모바일 결제 서비스인 ‘삼성페이’를 강조하고 나선 데는 안팎에서 제기된 이런 문제 의식이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삼성페이는 미국 애플의 ‘애플페이’에 맞서 삼성이 내세운 대항마다. 애플페이는 기존 유통매장의 결제 단말기를 바꿔야만 쓸 수 있지만 삼성페이는 그럴 필요가 없다. 훨씬 편리한 무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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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책임지는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은 “삼성페이는 전체 소매점의 90% 이상에서 사용이 가능해 빠른 속도로 시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게다가 삼성은 카드사로부터 결제 수수료를 한푼도 받지 않기로 했다. 애플페이의 결제 수수료가 0.15%(결제액 기준)인 것과 대조적이다. 눈앞의 이익을 버리고 카드사를 우군으로 끌어들여 삼성 주도의 모바일 결제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조치다.

삼성의 소프트 경쟁력 키우기는 세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필요한 기업은 과감히 사들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의 실질적 리더로 등장한 지난해 5월 이후 미국 루프페이, 스마트싱스 등 해외 소프트웨어·플랫폼 기업을 4개나 인수했다. 삼성페이도 삼성이 지난달 인수한 루프페이의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글로벌 기업과의 제휴도 확대하고 있다. 삼성은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 블랙베리 등과 손을 잡았다. 이들 기업의 서비스를 삼성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싣기로 했다. 독자 개발한 타이젠 OS 등 내부 역량 도 강화하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시대에 대비해 삼성 TV에 타이젠 OS를 깔기 시작했고, 인도에선 타이젠폰을 내놨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지원에도 올해 1억달러(약 1100억원)를 쓸 계획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송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애플이 100% 소트프웨어 회사라면 삼성은 5%도 안 된다”며 “과거 삼성이 반도체에서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과감히 투자했듯 소프트웨어에서도 애플이나 MS를 따라잡기 위해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대 교수는 “삼성 고위 경영진 중에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해본 사람이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