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춘의 데스크 시각] 고장난 금융산업을 고친다고?
금융산업 위기론이 한창이다. 정부와 업계 관계자 모두 입만 열면 금융산업 위기론을 외친다. 앞장은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섰다. 그는 “금융업이 뭔가 고장났다”고 타박했다. 며칠 뒤에는 “예대금리 차이만 바라보고 있다”고 질책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금융산업이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고 거들었다.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은 한 술 더 떠 “현재 상태라면 금융권이 고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위기론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최 부총리의 말대로 부가가치, 일자리, 세수 측면에서 금융업의 기여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국내총생산에서 금융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7%에서 지난해엔 5%대로 주저앉았다. 금융·보험업의 일자리는 2013년 12월 85만9000개에서 작년 말 80만7000개로 줄었다. 금융업이 내는 법인세는 한때 12조원이 넘었으나 최근엔 3조원대로 급감했다. 이런 상황이니 금융산업에 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하는 분위기다.

확산되는 금융산업 위기론

하지만 그 ‘뭔가’에 대해 정부와 업계의 시각은 약간 다른 것 같다. 정부는 과감한 개혁을 원한다. 최 부총리의 말을 빌리면 “외환위기 전 금융정책과 감독기능 분리, 금융업권 칸막이 제거 등을 주도했던 금융개혁위원회 수준의 과감한 구조개혁”을 뜻한다. 이를 통해 “실물지원 기능이라는 금융 본연의 기능을 활성화했으면 하는 것(임 위원장)”이 정부의 바람이다.

업계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개혁은 규제와 감독관행 개선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임 위원장은 지난달 3일 열린 ‘범금융 대토론회’에서 “명문화돼 있지 않은 규제, 구두 지도 등이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서였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감독당국 관계자들이 농협금융에 전화했다고 한다.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는 차원이었겠지만, ‘군기 잡기’로 해석하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이 쉽게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게 금융계의 시각이다.

잘못된 관행부터 타파해야

최 부총리가 지적한 ‘예대금리 의존’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다. 국내 은행들의 예대이익은 전체의 90%에 육박한다. 예대마진이 줄수록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를 극복하려면 예대마진을 키우든지, 수수료 수입 등 비(非)예대이익을 늘려야 한다.

현실은 아니다. 손해보며 취급해야 하는 연 2%대 ‘안심전환대출’ 등이 잇따르고 있음을 감안하면 예대마진이 커지는 걸 기대하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그렇다고 수수료 수입을 늘리기도 힘들다. 기회만 있으면 기존 수수료조차 내리라고 압박하는 감독당국을 보면 그렇다.

인사에 관여하는 행태도 문제다. 정부가 주인인 공기업이나 우리은행에 ‘그렇고 그런’ 인사를 앉히는 건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정부 지분이 하나도 없는 KB금융그룹에 대해서도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외이사 추천권을 달라’고 요구했다는 소리가 들리더니, 특정인을 KB금융 사장과 국민은행 감사로 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렇게 보면 단단히 고장난 금융산업을 고치기 위해선 ‘과감한 개혁’도 중요하지만 ‘나쁜 관행의 과감한 타파’가 먼저 필요한 것 같다.

하영춘 금융부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