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인수합병(M&A) 시장에서 기업 간 거래(B2B), 생태계(플랫폼), 소프트웨어 3대 분야를 정조준하고 있다. 일반 소비자 대상 거래보다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B2B 시장을 공략하고 삼성 중심의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하는 한편 하드웨어에 편중된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소프트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포석이다.
미래 신사업 발굴 속도내는 삼성…M&A 키워드는 B2B·플랫폼 구축·SW
삼성전자는 4일 미국 상업용 디스플레이(디지털 사이니지) 전문기업인 예스코를 인수했다. 예스코는 1988년 설립된 회사로 세계 최대 번화가로 꼽히는 영국 런던의 피커딜리 광장과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내 주요 호텔의 옥외 LED(발광다이오드) 광고판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인수로 삼성전자는 디지털 사이니지 분야에서 기존의 소형 LCD(액정표시장치) 광고판뿐 아니라 옥외 LED 광고판까지 B2B 영업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는 앞서 작년 하반기 미국 시스템 에어컨 유통업체 콰이어트사이드를 비롯해 프린팅 솔루션 업체인 캐나다 프린터온과 브라질 심프레스를 잇따라 인수했다. 모두 현지 유통망을 장악하거나 서비스 노하우를 흡수해 B2B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삼성이 B2B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한번 거래를 트면 큰 부침 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예컨대 프린터는 가정용 소비자 시장은 축소되고 있지만 기업 시장은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기존 거래 관계를 뚫고 들어가기가 힘든 게 단점이지만 한번 뚫기만 하면 큰 경쟁 없이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임원들에게 “IBM 같은 회사가 되자”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IBM은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에서 B2B 기업으로 변신한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생태계 구축도 삼성 M&A 전략의 핵심이다. 지난달 인수한 미국 루프페이가 대표적이다. 루프페이는 마그네틱 보안전송 기술을 가진 신생기업이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유통매장에 설치된 기존 결제 단말기를 활용해 손쉽게 모바일 결제를 할 수 있다. 미국 애플의 애플페이가 매장의 결제 단말기를 바꿔야만 쓸 수 있는 것과 비교할 때 한결 유리하다. 삼성은 최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공개한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6와 갤럭시S6엣지에 이 기술을 적용한 삼성페이를 선보이며 애플페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8월 미국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전문업체 스마트싱스를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은 자사 제품뿐 아니라 경쟁사 제품까지 집안의 모든 가전기기와 조명을 제어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해 이 회사를 사들였다.

소프트 경쟁력 강화도 핵심 화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 비디오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서비스 업체인 셀비와 빅데이터 관련 기업인 프록시멀데이터를 잇따라 인수했다. 이 중 프록시멀데이터는 기업용 서버 성능을 개선하는 소프트웨어에 특화된 회사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전으로 데이터 양이 폭증하면서 부각되고 있는 기업용 서버 시장 공략의 첨병이다.

삼성이 이처럼 M&A에 적극 나서는 것은 스마트폰 이후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해서다. 삼성 내부 기술만으로는 이들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기 어렵다고 보고 과감히 ‘외부 수혈’에 나선 것이다. 공격적 M&A는 외부 기술에 개방적인 이 부회장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삼성의 실질적 리더로 부상한 작년 5월 이후에만 8건의 M&A를 성사시켰다. 2007년 이후 지난해 4월까지 8년여간 M&A 실적이 22건에 그친 것과 비교할 때 무척 빠른 속도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