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용예산 '미스터리'] 세수(稅收) 19조나 부족한데…'안써도 그만'인 예산 35조 왜 잡았나
2013~2014년 2년간 예산 불용액 35조6000억원. 세수부족액 19조5000억원….

나라 살림이 수상하다. 박근혜 정부 들어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부족과 예산 불용이 반복되고 있다. 돈(국세수입)이 적게 들어오니까 쓸 돈을 줄여야 했다는 게 기획재정부의 설명이지만 매년 비슷한 양상이 되풀이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예산안 수립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청와대 측 시각이다.

안 써도 됐을 돈(불용액)을 처음부터 예산에 편성하지 않았다면 세수부족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복지 재정도 지금처럼 빠듯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공자기금에서 대규모 발생

지난해 정부 예산 불용액(전체 예산에서 총세출과 이월금을 뺀 금액)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 관련 예산이다. 기재부의 경우 공자기금 불용액만 5조원에 달해 전체 불용액(17조5000억원)의 29%를 차지했다.

공자기금이란 국고채 발행 자금 및 기금 등의 여유 자금을 통합 관리해 재정 융자 등 원활한 재정 운용을 뒷받침하는 기금이다.

예를 들어 각종 연기금이 공자기금에 자금 일부를 예탁하면 이를 맡아 투자 등의 방식으로 관리한다. 공자기금에 배정됐던 예산 5조원을 불용했다는 것은 시급하지 않은 자금거래를 이 금액만큼 줄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금융위원회도 공자기금 관련 예산 불용액이 많았다. 금융위는 지난해 전체 불용액 1조원 전액이 공자기금 관련 예산이었다. 기재부의 공자기금 불용액 5조원과 합하면 관련 불용액이 6조원으로 전체 불용액의 35%를 차지한다.

물론 공자기금 예산은 ‘서류상의 예산’이기 때문에 이것을 줄인다고 해서 복지예산을 늘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체 세출예산 규모를 줄일 경우 세수부족 문제가 완화될 뿐만 아니라 재정운용의 탄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별회계 가운데선 농어촌구조개선 예산 2조2000억원이 집행되지 않았고 교통시설특별회계(9000억원), 에너지 및 자원사업(1조3000억원) 등도 불용 규모가 컸다.

◆기재부 “예산낭비는 아닌데…”

청와대는 이런 예산을 처음부터 줄여잡았더라면 세수부족으로 인한 대규모 불용을 막고 예산 효율성도 높일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지난해 해외자원개발지원 관련 예산이 1조3000억원 불용된 것도 부실 편성을 의심케 하는 부분이다.

기재부는 청와대의 이 같은 시각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불용은 세수부족의 결과일 뿐인데 마치 예산 수립 과정에 큰 하자가 있다는 식으로 몰아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세출예산을 수시로 구조조정하고 나랏돈을 아껴 써야 하는 것은 수긍할 수 있지만 불용액 자체를 다른 재원으로 돌릴 수 있다는 발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초 엉터리 세수추계와 정교하지 못한 세출 계획으로 나라 살림을 망친 것은 기재부라는 비판도 만만찮다.

어쨌든 청와대가 불용액 내역을 심도있게 살펴보겠다고 나섬으로써 향후 예산편성과 집행 시스템 전반에 대한 수술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17년 임기 말까지 총 134조원에 이르는 ‘복지 공약가계부’ 중 84조원을 세출 절감으로 마련하겠다는 당초 기조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기재부의 세수예측 및 예산편성 시스템에도 대대적인 손질이 가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세출에 세입을 끼워맞추는 식의 예산편성 과정을 손질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세제실장을 지낸 전직 고위공무원 A씨는 “지금 같은 예산편성 방식으로는 대규모 세수부족과 불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세종=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