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는 ‘나세르’라는 카페가 문을 열어 이목을 끌었다. 나세르 카페는 1920년 중동에서 처음 아이스크림을 판매한 ‘역사’가 있는 곳이다. 아이스크림 판매가 보편화되면서 경영난으로 1950년대 문을 닫은 이곳을 바레인 문화관광부가 관광진흥 정책의 일환으로 부활시켰다. 아이스크림을 포함한 아라비아 커피 세트가 3~5디나르(1디나르는 약 2920원)로 싸지 않은 가격이지만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바레인 수도 마나마의 알무타나비 거리에 있는 나세르 카페에서 종업원들이 얘기하고 있다. 바레인 문화관광부는 근처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고 더 많은 관광 외화를 얻기 위해 1920년 세워졌다가 1950년대 문을 닫은 이 카페를 60년 만에 부활시켰다. 마나마=노경목 기자
바레인 수도 마나마의 알무타나비 거리에 있는 나세르 카페에서 종업원들이 얘기하고 있다. 바레인 문화관광부는 근처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고 더 많은 관광 외화를 얻기 위해 1920년 세워졌다가 1950년대 문을 닫은 이 카페를 60년 만에 부활시켰다. 마나마=노경목 기자
점원 비잔 마지디는 “바레인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다리가 없던 1920년 사우디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맛보기 위해 배를 타고 건너왔다”며 “사우디 사람들이 지금도 주요 고객”이라고 말했다. 이 카페의 망고아이스크림은 당시 제조법 그대로 만들고 있다.

달콤한 나세프 카페의 아이스크림에는 역설적으로 바레인의 절박함이 담겨 있다. 유가가 반토막 나면서 에너지 및 연관 산업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낮추는 데 속도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바레인은 각종 관광진흥 정책을 내놓는 한편 제조업 공장 유치에도 힘을 쏟고 있다.

저유가에 쪼그라드는 정부 지출

지난 9일 바레인 정부는 올해와 내년 예산을 유가 하락에 맞춰 재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알 하마디 정보장관 겸 정부 대변인은 “유가 하락이 미치는 영향에 맞춰 정부 지출을 감축할 것”이라며 “감축 규모는 이달 말까지 밝히겠다”고 말했다.

작년 여름 이후 바레인을 비롯해 걸프협력회의(GCC·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오만 바레인) 국가들의 경제 근간을 이뤄온 두바이유 가격은 50% 가까이 떨어졌다. 최근 소폭 반등(13일 현재 배럴당 55.84달러)했지만 작년 7월 배럴당 108.64달러였던 두바이유는 지난달 20일 45.28달러까지 떨어졌다. 배럴당 60~70달러에 맞춰 올해 예산안을 짰던 GCC 국가들은 떨어진 유가에 맞춰 4월부터 시작되는 2015 회계연도 예산을 수정하고 나섰다.

가장 발빠르게 움직인 곳은 쿠웨이트다. 쿠웨이트는 232억디나르였던 올해 예산을 지난달 191억디나르로 20% 가까이 줄였다. 석유 판매가 재정 수입의 88%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예상 유가를 배럴당 45달러까지 낮춰 잡자 지출 가능액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 오만 등은 국민들의 에너지 소비에 지급하던 보조금부터 감축할 예정이다.

유가 급락 선제 대응 시동

바레인에서는 아직 유가 하락에 따른 타격이 겉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마나마 중심가에 있는 바레인 최대 쇼핑몰 시티센터는 평일 낮에도 쇼핑객으로 붐볐다. 이곳에서 바레인 F1(국제 자동차경주대회 포뮬러원) 티켓을 판매하는 알 자니히는 “쇼핑객의 숫자가 유가 하락 이전과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비안 자말 경제개발위원회 전무이사는 “안을 들여다보면 바레인 경제도 유가 하락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바레인 국내총생산(GDP)에서 에너지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로, 이 비중이 40%가 넘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GCC 국가와 비교하면 낮은 편이다. 2000년에는 바레인 역시 GDP의 44%를 에너지산업이 차지했지만 기간산업 민영화와 적극적인 해외 자본 유치 등을 통해 금융산업과 제조업을 적극 육성했기 때문이다.

에너지산업에 대한 경제 의존도는 다른 중동 국가들에 비해 낮지만 GDP의 13%를 차지하는 정부 지출은 전적으로 에너지 판매에 의존하고 있다. 바레인경제개발위원회(EDB) 관계자는 “바레인은 법인세와 소득세가 없고 도로 정비 재원 조달을 위해 부동산 거래세 정도만 걷고 있다”며 “대부분 재정 수입은 남부지역 및 해상의 유전 개발을 통해 얻는다”고 말했다. 게리 샤키 바레인국제투자단지 사업본부장은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이하로 떨어지면 바레인 정부가 증세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GDP의 17%를 차지하며 GCC 내 최고 인프라를 자랑하는 금융산업도 에너지산업과 밀접하다. 압둘 라만 바레인중앙은행 금융감독국장은 “바레인 내 은행과 보험업의 상당 부분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GCC 국가들의 에너지 개발사업 자금 모집 및 사업 재보험에 이용된다”고 말했다.

제조업 및 IT산업 육성으로 돌파

바레인 정부는 현재 15%인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을 2020년 20%까지 올린다는 계획이다. 에너지산업 의존도를 더욱 줄이기 위해서다.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해 규제장벽도 대폭 낮췄다. 중동 국가 중 유일하게 외국 기업이 지분 100%를 갖고 단독 법인을 세울 수 있는 곳이 바레인이다. 이익을 자국에 송금하더라도 별도의 세금이 없다.

2012년 컨설팅업체 KPMG는 같은 사업을 할 경우 바레인에서 드는 비용이 두바이나 카타르의 3분의 2 수준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샤키 본부장은 “인도 식품회사 JBT가 중동 지역 공장을 지난해 아랍에미리트에서 바레인으로 옮기는 등 바레인을 중동 사업의 거점으로 여기는 제조업체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을 모델로 삼아 800만달러를 들여 구축한 전자정부 시스템은 외국 기업들이 간편하게 사업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고, 자체 소프트웨어산업 육성에도 기여하고 있다. 페라스 아매드 전자정부청 수석보좌관은 “온라인 콘텐츠 개발 역량을 키우기 위해 대학들과 협력하는 한편 민간 인력에 대한 소프트웨어 교육도 직접 진행하고 있다”며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나이트클럽·술·콘돔까지 허용…
‘사우디의 화장실’ 오명에도 개방정책 힘 쏟는 바레인


콘돔과 나이트클럽, 술, 극장 그리고 돼지고기.

25㎞의 연륙교를 이용해 30분이면 오갈 수 있는 거리인데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없고 바레인에는 있는 것들이다. 1982년에 만들어진 연륙교는 이슬람권의 주말이 시작되는 목요일 저녁만 되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바레인으로 건너오는 차들이 길게 꼬리를 짓는다. 자국에서는 누릴 수 없는 유흥과 문화를 즐기려는 사우디아라비아인이 몰려 평소에는 120만명인 바레인 거주 인구가 주말 동안 150만명으로 늘어나기도 한다. 주말이 끝나는 토요일 저녁이면 반대로 바레인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넘어가는 차들이 2~3시간씩 밀려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이 반입 금지 물품인 술과 돼지고기를 막기 위해 철저한 검문검색을 펴는 탓이다.

바레인 역시 다른 중동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이슬람교가 국교다. 사우디 사람들이 건너와 ‘금지된 욕망’을 풀면서 바레인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화장실’이라는 오명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바레인은 경제적 실리를 얻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에서는 미미한 수준인 서비스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7%를 차지한다. 김삼종 우리은행 마나마 지점장은 “최대한 제도 및 문화의 장벽을 낮춰 더 많은 외국 기업과 외국인이 활동하도록 하는 것이 바레인의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이슬람 율법에서 금지한 돼지고기와 콘돔을 약국에 쉽게 살 수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마나마 주페어 거리에 있는 나이트클럽 ‘클럽360’에서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현지 여성도 만날 수 있었다. 시내 극장에서는 미국 군인이 이라크에서 이슬람 전사들을 사살하는 내용의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상영되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온 20대 젊은이 나심 페크리에게 영화 내용이 불편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좋아할 뿐 영화 속 미국인과 이라크인 중에 한쪽에 더 동질감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마나마=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