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주-김택진, 전략적 제휴 불발…게임벤처 1세대 동지, 결국 敵으로
서울대 공대 85학번, 86학번 선후배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김정주 NXC(넥슨 지주사) 대표가 갈라섰다. 3년 전 두 사람은 엔씨소프트 지분을 나눠 갖고 해외 게임사 인수, 게임 공동 개발 등에 나서자며 손잡았다. 그러나 모두 불발로 끝났다. 지금은 엔씨소프트 경영권을 놓고 양보 없는 지분 경쟁을 벌여야 할 판이다.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바꾸고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 파견을 추진함에 따라 인터넷 게임 벤처 1세대로 한때 동지였던 두 사람은 운명을 건 주총 표 대결을 벌일 전망이다.

◆지난해 초부터 갈등 불거져

두 사람 간의 갈등이 표면화된 것은 지난해 10월 넥슨이 김택진 대표에게 미리 통보하지 않고 엔씨소프트 지분 0.38%를 추가 매입하면서다. 넥슨이 가진 엔씨소프트 지분은 15%를 넘어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 신고 대상이 됐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엔씨소프트는 “단순 투자 목적이라는 지분 매입 목적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주시할 것”이라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김정주-김택진, 전략적 제휴 불발…게임벤처 1세대 동지, 결국 敵으로
하지만 두 회사 사정에 밝은 게임업계 관계자는 김정주·김택진 대표 간 갈등은 이미 지난해 초부터 시작됐다고 전했다. 2014년 1월 마비노기2 공동 개발팀이 해체되면서였다. 이는 2012년부터 진행돼 온 두 회사의 첫 협업 프로젝트였다. 이어 3월엔 메이플스토리2 공동 개발 프로젝트마저 중단되면서 두 회사의 교류는 완전히 끊겼다.

당시 양측은 대외적으로 “사업성을 고려한 결정”이라며 “새로운 형태의 제휴를 모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내부에선 두 회사의 이질적인 개발 문화 때문에 협업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대형 M&A·공동 개발 등 모두 불발

김정주-김택진, 전략적 제휴 불발…게임벤처 1세대 동지, 결국 敵으로
국내 1, 2위 게임사를 경영하는 두 사람이 손을 잡은 건 2012년 6월이었다. 넥슨 일본법인이 김택진 대표가 보유한 지분 14.70%를 약 8045억원에 인수하면서다. 김택진 대표는 보유 지분이 24.69%에서 9.99%로 줄어들면서 2대 주주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넥슨은 전략적 제휴라고 밝히며 김택진 대표의 경영권을 보장했다.

김택진 대표는 2012년 7월 한국능률협회 최고경영자 세미나에서 “회사 설립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위기의식에서 지분을 매각하게 됐다”며 “오래전부터 넥슨과 힘을 합칠 때는 합치고 경쟁할 때는 경쟁하자는 교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협력해야 할 시기”라고 지분 매각 이유를 설명했다.

그해 11월 열린 국제게임축제 지스타에선 “한국 게임산업의 분기점이 될 수 있는 대형 인수합병(M&A)을 넥슨과 추진하려 했다”며 “8월을 목표로 잡았지만 뜻대로 안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회사의 M&A는 더 이상 추진되지 않았다.

◆갈등 봉합 둘러싸고 긴박했던 주말

교류가 끊어진 데다 엔씨소프트 주가마저 곤두박질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었다. 넥슨이 주당 25만원을 주고 인수한 엔씨소프트 주가는 작년 9월 13만원대까지 떨어졌다. 넥슨이 2년 사이에 3700억~3800억원을 날렸다는 기사들이 10월 넥슨의 지분 추가 매입을 앞두고 나왔다. 때문에 엔씨소프트는 그런 기사 배후에 넥슨이 있다고 의심을 했다.

상황은 지난주부터 긴박하게 돌아갔다. 넥슨은 당초 지난 22일 경영 참여 공시를 내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택진 대표가 대화로 풀자고 제의해 공시는 미뤄졌다. 양측은 주말 내내 경영협력에 대한 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엔씨소프트가 23일 넥슨과 의논 없이 김택진 대표의 부인인 윤송이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킨 데 이어, 27일 오전 독자 경영을 통보하면서 양측의 협상은 결렬됐다.

넥슨은 “지난 2년 반 동안 엔씨소프트와 다양한 협업을 시도했지만 한계가 있었다”며 “두 회사의 기업가치가 커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투자자로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황순현 엔씨소프트 전무는 “단순 투자 목적이라던 공시를 불과 3개월 만에 뒤집어 신뢰를 무너뜨린 것에 심히 유감”이라며 “양사는 개발 철학, 비즈니스 모델 등이 이질적이어서 이번 넥슨의 일방적인 경영 참여 시도는 시너지가 아닌 엔씨소프트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김정주 대표와 김택진 대표는 더이상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버린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