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폭락한 구리 가격…글로벌 경기 둔화의 '전주곡'
국제 유가에 이어 구리 가격이 폭락하면서 글로벌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국제 유가 하락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미국 간 ‘에너지 패권 다툼’의 영향을 받고 있는 반면 대표적 산업용 비철금속인 구리 가격 하락은 뚜렷한 글로벌 경기 둔화의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구리 가격, 유가 이어 큰 폭 하락

구리 가격은 올 들어 14일(현지시간)까지 11.3% 떨어졌다. 지난해 6월 고점 이후 60%가량 떨어진 유가에 이어 주요 원자재 중 하락 폭이 가장 크다. 2011년 2월 고점 대비로는 45% 하락했다. 구리 가격은 2011년 초반 이후 꾸준히 하락세를 보여왔으나 최근 들어 하락 속도가 가팔라졌다. 이날 5.2% 급락한 것은 전날 세계은행이 올해 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 구리 수요의 40%를 차지하는 중국의 경기 둔화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세계은행은 중국의 올해 성장률을 작년 6월 7.5%에서 두 달 전 7.2%로 낮춘 데 이어 이번에 7.1%로 추가 하향 조정했다. 실제 지난해 중국의 구리 수입량은 전년 대비 7.6% 줄었다. 블룸버그통신은 “공급 과잉을 우려하는 투자자들이 가격 하락을 예상해 선물시장에서 구리를 대거 매도하면서 가격 낙폭이 커졌다”며 “원자재 시장이 하락장(베어마켓)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구리는 건축, 전기전자, 자동차 등 웬만한 산업에 모두 들어가는 원자재다. 이 때문에 구리 가격은 경기에 선행해 움직이는 특성이 있어 흔히 ‘구리 박사’라고 불린다. 경기 움직임을 미리 안다는 의미다. 중국의 제조업이 회복세를 보일 것 같으면 구리 가격이 이보다 앞서 오르는 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구리 가격은 글로벌 경제 흐름을 먼저 보여주는 풍향계”라며 “구리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글로벌 경기 둔화를 예측하는 시각이 많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른 원자재로 전이…국채 쏠림 심화

글로벌 경기 둔화 가능성을 반영한 구리 가격 폭락은 다른 원자재로 전이되고 있다. 이날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알루미늄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0.4% 하락한 t당 1783.75달러를 기록했다. 8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니켈 가격도 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납 가격 역시 3.4% 떨어진 t당 1766.50달러를 기록했다.

구리 가격 폭락에 미국과 유럽 증시도 타격을 입었다. 구리 생산 업체들의 주가가 폭락했다. 이날 유럽 증시에서 다국적 광물업체 글렌코어 주가는 9.3% 급락했고, 미 증시에서도 글로벌 최대 구리 및 금광개발 업체 프리포트 맥모란의 주가는 11.7% 떨어졌다.

원자재 가격이 줄줄이 하락하고 글로벌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인 국채시장에 몰리고 있다. 미국의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이날 한때 연 2.39%까지 내려앉았다. 사상 최저(가격은 사상 최고) 수준이다. 캐나다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2년 반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2년 만기 국채 금리는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더그 카스 시브리즈파트너스 전략가는 “유가, 구리 가격, 국채 가격 모두 글로벌 경제 둔화라는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