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국채 매입을 통한 전면적 양적완화로 가는 길의 마지막 걸림돌이 제거됐다. 국채 매입의 유럽연합(EU) 조약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소송에서 유럽사법재판소(ECJ)가 14일 ECB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페드로 크루스 비얄론 ECJ 법무관은 이날 발표한 ECB의 국채매입프로그램(OMT)에 대한 중간판결에서 “OMT는 EU 조약에 위배되지 않으며 공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ECB의 국채 매입은 EU 회원국들이 취약해질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필요하고 적절한 조치”라며 “ECB는 통화정책에서 광범위한 재량권을 갖는다”고 덧붙였다. ECJ의 최종 판결은 4~6개월 후에 나오지만 중간판결 결과를 뒤집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2월 독일 헌법재판소는 OMT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ECJ에 전달했다. EU 조약에 회원국의 재정적자를 ECB가 메워줄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는 점에서였다.

이 때문에 ECB는 2012년 그리스와 스페인 등 재정위기국을 구제하기 위해 OMT를 일찌감치 내놨지만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그간 미국 중앙은행(Fed)처럼 국채를 매입해 직접 돈을 풀지 않고 은행에 대한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으로 간접적인 양적완화를 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ECJ가 OMT에 법적 정당성을 부여함에 따라 오는 22일 열리는 통화정책회의에서 ECB가 국채 매입을 포함한 전면적 양적완화를 진행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이날 독일 주간 디자이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추가 물가 하락을 막기 위해서는 확장적 통화정책이 필요하며 다른 통화정책위원도 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유로화가 추가로 풀릴 거라는 전망에 따라 이날 유로화 가치는 유로당 1.1747달러까지 하락했다. 이는 1999년 1월 유로화 출범 당시 외환시장에서 처음으로 거래되던 가치와 같은 수준이며 9년 만의 최저치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