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와 루블화 가치 급락으로 경제위기에 빠진 러시아가 밀 등 곡물 수출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치솟는 자국 내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다. 러시아의 곡물 수출 제한 조치로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밀 가격은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22일(현지시간) 각료회의에서 “식량 안보를 위해 곡물 수출을 행정적으로 제한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아르카디 드보르코비치 부총리는 “곡물에 수출 관세를 부과하는 결의안을 24시간 안에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카고거래소에서 3월 인도분 밀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7.5센트 오른 부셸당 6.40달러에 거래됐다. 밀 가격은 러시아의 공급 불안 우려로 9월 말 이후 40%가량 상승했다.

러시아는 이미 지난주 곡물 검사 강화와 철도 수송 제한 등으로 곡물 재고 확보에 나섰다.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자 곡물업체들이 달러를 벌어들일 목적으로 수출량을 급격하게 늘려 내수 물량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드보르코비치 부총리는 “올해 수확한 1억400만t 가운데 내수에 영향을 주지 않고 수출할 수 있는 물량은 2800만t인데 지난 7월 이후 벌써 2100만t이 수출됐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세계 4위 밀 수출국으로 연간 2000만t을 수출한다. 로이터는 곡물수출 제한이 서방 경제 제재에 대한 ‘맞불’ 성격도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러시아 밀의 주요 수입국인 터키와 이집트가 이번 수출 관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지 주목하고 있다. 스테판 보겔 라보뱅크 농산물 담당 리서치헤드는 “두 나라가 관세를 부과받지 않으면 수출 관세가 적용되는 밀 물량은 300t에 그쳐 시장 충격은 크지 않을 전망”이라며 “두 나라가 포함되면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