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산업 모조리 위축…혁신기업은 代 끊길 판
삼성 현대자동차 등 10대 그룹 중 올해 인력·사업 구조조정을 한 곳은 7곳에 이른다. 시가총액 100대 기업 중 53곳이 지난 1년 새 이익이 줄거나 적자를 냈다. SK그룹의 정유·화학 주력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은 실적 악화 탓에 올해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를 하지 않았다. 국내 2위 철강기업 현대제철은 인천 주강(鑄鋼) 공장을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내 기업이 심상치 않다. 사업을 접고, 인력을 줄이고, 적자를 냈다는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온다. “지금은 추락의 속도를 어떻게 늦추느냐를 걱정해야 할 때”(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라는 분석부터,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위기”(정구현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초빙교수)라는 진단까지 나온다.

기업들의 위기는 수익성 악화로 나타난다. 전자(삼성전자) 자동차(현대차) 조선(현대중공업) 철강(포스코) 석유화학(SK이노베이션) 등 간판 기업들의 수익성은 지난 1년 새 모두 악화됐다. 중소기업 매출 증가율은 2011년 10.59%에서 작년 5.6%로 반토막 났다. 투자도 안 한다. 작년 기업 설비 투자는 전년보다 1.5% 감소했다. 불안정한 해외 요인과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국내 규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이다.

그렇다고 산업생태계의 역동성이 살아있는 것도 아니다. 해외에선 구글 테슬라 알리바바 샤오미 등 패기 넘치는 기업이 앞다퉈 나온다. 반면 한국 혁신기업의 ‘대’는 끊길 위기다. 국내 500대 기업 중 1980년대 이후 창업한 ‘젊은 혁신기업’은 네이버 멜파스 넥슨뿐이다.

지난 50년간 기업에 위기는 늘 있었다. 그때마다 기업은 더 강한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기업인들이 위기 돌파의 선두에 섰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외환위기 직후 전열을 재정비해 일본 전자기업들을 추월해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체코·러시아 공장을 세워 위기 이후를 대비했다.

현진권 자유경제원장은 “위기일수록 기업인들이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며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움직임은 반대인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