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리턴' 논란이 갈수록 거세지면서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경영체제까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경영체제에 위기가 닥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7년 225명이 사망한 괌 추락사고 2년 만에 다시 상하이공항 추락사고까지 터진 대한항공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오너경영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이 때문에 이틀 만에 창업주 조중훈 회장이 퇴진하고 당시 사장이었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사장직에서 물러나 대외업무만 하는 회장직을 맡았다. 조 회장은 같은 해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이후 델타항공의 컨설팅을 받아 안전성 제고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덕에 2000년대 들어 경영체제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왔으나 이번 '땅콩 회항' 사건은 일순간에 이런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말았다.

특히 조 회장이 "제가 (자식) 교육을 잘못시킨 것 같다. 죄송하다"면서 딸을 그룹의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지만 조 전 부사장 퇴진 만으로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 일고있다.

견과류 서비스 방식 때문에 비행기를 되돌린 이번 '땅콩 리턴' 사건은 조 전 부사장 개인의 우발적 행동이 아니라 대한항공 오너 가문 차원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김경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번 횡포는 이 비행기는 내 것이며 모든 직원이 내 소유물이라고 착각하는 전근대적 천민주의 사고방식이 불러온 제왕적 경영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논객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자신의 SNS를 통해 "직원을 신분적으로 예속된 봉건주의적 머슴으로 바라본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며 대한항공을 북한에 빗대 꼬집은 바 있다.

사건 이후 장본인인 조 전 부사장이나 총수인 조 회장이 직접 신속히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변명으로 일관하며 사무장에 책임을 돌린 '사과문'을 내놓게 해 화를 키운 것도 오너 일가가 절대적인 회사의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 탓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가인 한승범 맥신코리아 대표는 "대한항공 노조원들이 비아냥거릴 정도의 사과문을 내놓는 것을 보면 이 회사에 제대로 경영체제나 위기관리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의 한 간부도 "3세들이 경영진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족벌경영에 대한 우려나 불만이 커졌다"면서 "조 회장도 답답하지만 3세들을 보면 희망이 없다고 자조한다"고 말했다.

몇 년 전 국토부에서 항공 업무를 맡았던 한 공무원도 "대한항공 자체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지만 오너 일가 경영체제는 문제를 많이 안고 있었고 결국 이번 일로 그 바닥이 드러나는 것 같다"면서 "족벌경영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조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조원태 부사장 역시 도로에서 시비가 붙은 70대 할머니를 밀어 넘어뜨려 입건되고 시위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에 폭언하는 등 부적절한 언행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한경닷컴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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