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콘덴서 부품을 생산하는 H사는 일본 등에 전체 생산 제품의 80%를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500억원. 그러나 2년 전부터 엔화 약세로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 원·엔 환율이 떨어지면서 엔화로 받은 수출 결제대금을 원화로 환전할 때 그만큼 수입이 줄고 있다.

L대표는 “엔화가치가 계속 떨어지고 있어 손해를 보면서 시장을 지킬 것인지, 수익성을 생각해 시장을 포기할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L대표는 “엔화가치가 100엔당 900원 밑으로 떨어지면 수출을 해도 손해를 본다”며 “정부에서 (외환시장) 대책을 세워주지 않으면 수출을 그만둬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엔저(엔화가치 절하)가 한국 수출기업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특히 대(對)일본 수출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최근 한국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연구원이 발간한 ‘엔저와 우리 수출입동향 및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의 대일본 수출은 지난 9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4.6% 줄었다.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대일본 수출은 2012년 -2.2%, 2013년 -10.7%에 이어 올해까지 3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게 된다.

특히 올 들어 9월까지 5대 일본 수출품목 중 철강판(23.3%)을 제외한 석유제품(-20.0%), 무선통신기기(-12.4%), 반도체(-16.4%), 금은 및 백금제품(-10.6%) 등 주력수출 품목들이 줄줄이 마이너스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장상식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에너지를 제외한 일본의 주요 15개 수입품목 중 한국은 10개 품목에서 일본 내 점유율이 하락했다”며 “일본의 추가 양적 완화에 따라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많은 기업, 특히 중소기업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내년 이후를 더 걱정하고 있다. 미국이 돈 풀기를 멈춘 상태에서 일본이 양적 완화를 계속해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40엔대(현재 110엔대)로 오르고, 원·엔 환율은 100엔당 800원대(현재 950원)로 떨어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장 연구위원은 “원·엔 환율이 800원대로 떨어질 경우 해외수출이 전체적으로 3% 이상 줄어든다”며 “정부가 큰 흐름을 잡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수진/김유미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