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6년 만에 끝나는 '돈잔치'…고위험 금융자산 거품 꺼지나
지난 6년간 채권 매입을 통해 시중에 3조5000억달러(약 3670조원)를 풀었던 미국의 양적 완화 종료 후 금융시장의 거품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중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과 저금리 기조가 맞물리면서 고위험 금융상품에 투자자금이 대거 쏠렸기 때문이다. 양적 완화 종료 후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기 전에 투자자들의 매도 공세가 펼쳐지면 단기간에 상품 가격이 급락해 예기치 않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비우량 ABS·정크본드 등 활황

29일 미국 시장조사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서브프라임 오토론(비우량 자동차 할부금융) 자산유동화증권(ABS) 시장은 유례없는 활황 국면을 맞고 있다. 올 들어서만 174억달러어치 서브프라임 오토론 ABS가 발행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2년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넘은 뒤 빠르게 증가했다. 지금 추세라면 올 서브프라임 오토론 ABS 발행금액은 글로벌 금융위기 전 사상 최대 수준에 달할 전망이다.

서브프라임 오토론은 신용도가 낮은 사람이 자동차를 살 때 이용하는 대출이다. 이런 대출을 한데 묶어 기초자산으로 해 발행하는 증권이 서브프라임 오토론 ABS다. 신용도가 낮은 사람의 대출을 바탕으로 만든 상품인 만큼 투자위험이 큰 편이다. 투자위험이 큰 데도 발행금액이 계속 늘어난 것은 블랙스톤, 콜버그크레비스로버츠(KKR) 등 대형 사모펀드들이 조금이라도 더 높은 수익률을 노리고 앞다퉈 투자를 확대했기 때문이다.

고금리를 추구하는 투자자가 많아지면서 과열 양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시장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자 앞으로 실행될 서브프라임 오토론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하는 ABS까지 나왔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모기지담보증권(MBS) 시장에서 벌어진 현상과 비슷하다”고 전했다.

◆“금리 인상 본격화 땐 시장 충격”

다른 고위험 상품도 마찬가지다. 구조화채권 일종인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은 올 상반기에만 632억달러가 발행됐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50% 이상 증가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최근 투자자 보호가 취약하다고 경고한 정크본드(투기등급 채권)도 발행 규모가 빠르게 커졌다. 올 들어 발행된 정크본드는 2500억달러를 웃돌아 작년 사상 최대 수준에 근접했다.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을 지낸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정부의 재정지출과 통화부양 기조가 자산 가격 상승으로 나타날 수 있다”며 “정크본드 금리 수준을 봤을 때 지금의 거품이 꺼지면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수준까지 늘어난 고위험 상품 판매는 지난 6년간 이어온 저금리 기조와 시장의 유동성 확대가 빚어낸 결과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모기지증권(MBS) 등을 사들이는 식으로 시중에 푼 돈은 3조5000억달러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저금리로 투자 수익률이 하락한 투자자들은 Fed가 시장에 자금을 계속 풀자 이에 안심해 고위험 상품에 마음 놓고 투자했다.

매트 킹 씨티그룹 신용전략가는 “경제가 확실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위험 상품 시장이 활황을 보인다는 건 시장에 그만큼 거품이 끼었다는 증거”라며 “투자자들의 수익 추구 욕망이 다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벌써 이런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펀드 조사업체 리퍼에 따르면 최근 4주째 미국 투자자들은 정크본드에 주로 투자하는 펀드에서 자금을 빼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시장 일각에서는 Fed가 돈풀기를 멈추고 금리 인상 준비를 본격화하면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약화돼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