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셰일혁명의 힘] 셰일혁명으로 국제油價 급락…美, 경제·안보 '두 토끼' 잡는다
국제유가가 지난 석 달여간 20% 이상 급락하면서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반미(反美)’ 3개국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이들 3개국은 재정수입의 절반 이상을 원유에 의존하고 있어 재정에 빨간 불이 켜졌다. 유가 하락은 글로벌 경제의 성장 둔화에 따른 수요 부진 탓도 있지만 미국의 ‘셰일혁명’으로 인한 공급 증대 영향도 크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셰일혁명으로 경제와 안보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이란·베네수엘라 ‘치명상’

뉴욕타임스는 28일(현지시간) 미국과 핵협상을 벌이고 있는 이란 정부가 경제제재로 원유판매 자금이 절반가량 줄어든 상황에서 유가마저 급락해 궁지에 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지난해 경제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중산층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유가를 배럴당 140달러로 잡고 재정 운영 계획을 짰지만 유가가 80달러대로 떨어지면서 향후 3개월간 23억달러의 재정적자가 불가피하다. 중산층에 대한 각종 보조금을 삭감해야 할 상황이다. 이란 상공회의소의 잼시스 에델라틴 이코노미스트는 “로하니 정권이 핵협상을 타결해 경제제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러시아 재무장관은 최근 “재정 악화로 총 7200억달러 규모의 국방 10개년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진 루머 카네기재단 러시아 담당 연구원은 “러시아가 경제제재보다 유가 하락에 더 큰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정수입이 줄어들고 있는 크렘린이 금융제재에 묶여 있는 은행들에 자금을 계속 공급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1980년대 중반 유가 급락이 소련의 해체를 몰고 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에너지 기업의 자금을 발판으로 권력을 장악한 푸틴 대통령의 권력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남미 국가들의 지지로 지난 9월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선출된 베네수엘라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수출의 96%를 원유에 의존한다. 재정수입 감소로 외화보유액은 이달 초 200억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2003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7%에 육박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위기 발생 당시 그리스와 스페인보다 높다.

◆미국 안보·경제 실리 챙겨

워싱턴 정치소식통들은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감산에 나서지 않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사우디와 미국 사이에 모종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된 러시아와의 긴장관계, 이란 핵협상 등을 비롯한 중동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가 하락을 ‘와일드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유가 하락은 미국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도 크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미국에서 휘발유 가격이 갤런(3.78L)당 1센트 하락하면 연간 14억달러, 50센트 떨어지면 670억달러의 소비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다만 원유업체는 수익성이 악화돼 피해가 불가피하다. 셰일업체들의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60달러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