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경제 부처의 예산담당 정책기획관은 연말로 예정돼 있던 사업 규모를 줄이는 방안을 마련하느라 고심하고 있다. 지난주 서울에서 기획재정부 주재로 열린 예산 담당자 회의에서 주요 사업은 예정대로 진행하되 당장 급하지 않은 사업은 지출을 줄여달라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해당 국장은 “복지 분야에는 손을 못 대기 때문에 시급성이 떨어지는 사회간접자본(SOC)사업을 내년으로 미루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稅收부족 다급한 기재부…"4분기 예산, 내년 넘겨 '재정절벽' 막아라"
○기재부 “연말까지 돈 쓰지 마라”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확대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던 정부가 긴축재정에 돌입한 것은 세수 부족 상황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올초 잠깐 나아질 기미를 보였던 세수진도율이 ‘세월호 참사’ 이후 완전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며 “올해 세수 부족액이 기존 전망 대비 10조원을 넘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지난 22일 내놓은 ‘2015년 세입예산안 분석 및 중기 총수입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국세 수입이 205조7000억원으로 당초 정부 전망(216조5000억원)보다 10조7000억원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 지출은 들어오는 돈(세입)을 바탕으로 기재부가 각 부처나 사업에 예산을 배분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그해 세수와 재정적자 현황에 따라 불용 예산이 늘거나 줄어들 수 있다. 세수 여건이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2011년과 2012년 불용 예산은 각각 5조8000억원과 5조7000억원으로 평년 수준을 유지했지만 8조5000억원의 세수 부족 사태가 있었던 지난해에는 18조1000억원이 불용 처리됐다. 지난해 하반기에 정부 재정 지출을 평소보다 10조원 이상 줄여 세수 부족에 대비한 것이다.

급증하고 있는 국가 채무 문제도 발목을 잡았다. 올해 1~8월까지 누적 관리재정수지적자는 34조7000억원으로 5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적자(29조9000억원)보다 4조8000억원 늘어난 것이다.

○세수 따라 재정 확대-긴축 반복

이에 따라 4분기 재정 확대를 통한 성장률 방어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취임 이후 재정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을 강조해온 데 이어 지난 8일에는 연말까지 기금과 정부 지출 등을 활용해 ‘31조원+α’의 자금을 풀겠다고 공언했지만 불용액이 늘어나면 이 같은 재정 확대 효과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방문규 기재부 2차관도 지난달 기자와 만나 “확장적 재정 정책을 뒷받침한다는 의미에서 올해 불용 예산을 늘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불과 한 달 만에 방침을 바꿨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상반기에 재정을 조기 집행한 이후 하반기에 세출을 줄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경기 회복 기반이 미약한 상황에서 예정된 재정지출을 2년 연속 큰 폭으로 줄이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 같은 ‘재정절벽’ 상태에 직면한 것은 경기가 부진한데도 올해 국세 수입 예상 규모를 지나치게 높게 잡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국세는 201조9000억원이 걷혔지만 정부는 이보다 14조6000억원(6.7%) 늘린 216조5000억원이 올해 걷힐 것으로 전망했다. 침체된 세계 경기와 내수 등을 고려하면 애초부터 달성하기 힘들었다는 지적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것”이라며 “확장적 재정정책 기조를 바꾸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세종=김우섭/이현일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