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임 '표 대결' 강행해야" vs "법원 결정 때까지 기다려야"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의 거취를 둘러싸고 KB 이사회 내에서 내분이 벌어지고 있다.

임 회장의 억울한 심정은 알지만 대세를 따라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에 맞서 일부 이사들이 강경한 사퇴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더구나 임 회장이 사퇴를 거부하고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직무정지 효력정지 가처분과 행정소송을 제기한 만큼 법원이 판단을 내릴 때까지 해임 의결을 보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15일 이어 17일 이사회도 '격론' 벌어질듯
17일 금융계에 따르면 KB금융지주 이사회는 국민은행 주 전산기 교체 문제와 관련해 지난 12일 금융위원회에서 직무정지 3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임 회장의 해임을 이날 저녁 논의할 예정이다.

이는 다수의 이사가 "KB금융의 조직 안정을 위해 임 회장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모은 지난 15일 간담회의 후속 모임이다.

지난 15일 간담회의 결론은 사실상 임 회장의 자진 사퇴를 권고하는 것이지만, 여기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일부 이사가 사퇴 권고에 찬성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이사회 전원'이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고 '다수의 이사'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다.

표현 방식에서도 '사퇴를 권고한다'는 직접적인 표현을 쓰지 못하고, '임 회장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완곡한 표현을 써야 했다.

한 사외이사는 "임 회장이 명백하게 법률을 위반했거나 회사에 중대한 손실을 끼친 적이 없는데 단지 금융당국이 원한다는 이유로 사퇴를 강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당초 이날 간담회에서는 사퇴 반대론과 해임 불가피론을 절충해 '이사회 전원은 만장일치로 임 회장에게 사퇴를 권고하다'는 수준의 합의를 끌어낼 계획이었다.

만약 합의 도출에 실패하면 19일 정식 이사회를 열어 임 회장의 해임 의결을 표 대결로 강행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임 회장의 전면적인 사퇴 거부와 행정소송 제기 등으로 이사회의 행보는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임 회장은 전날 금융위를 상대로 '직무정지 처분 효력정치 가처분' 신청과 본안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 "대세론" vs "법원 가처분 결정 때까지 보류해야"
임 회장의 행정소송으로 이사회 내에서 해임 반대론자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만약 이사회가 해임을 의결한 후 법원이 임 회장이 금융위를 상대로 낸 '직무정지 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다면 이사회는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법원이 일시적으로나마 무효로 한 직무정지 징계를 근거로 해임을 의결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해임 반대론자들은 통상 2~3주 걸리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 때까지라도 해임 논의를 보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임 회장 또한 이사회 측에 법원의 결정 때까지 해임 논의를 보류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1월 회사의 미공개 정보를 주총의안분석기관인 ISS에 제공한 혐의로 금융감독원에서 중징계를 받은 박동창 전 KB금융지주 부사장의 경우 서울행정법원에 낸 징계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한 사외이사는 "오늘 회동에서 해임을 의결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며 "더구나 임 회장이 소송을 제기한 만큼 이사회 내부의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사회의 고민은 임 회장의 강경 행보가 이사회까지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커지고 있다.

이사회가 해임을 의결하면 임 회장이 이사회를 상대로 '해임 정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소송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이사회마저 소송전에 휘말리는 셈이다.

하지만 당국의 압박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 또한 이사회가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KB금융지주 전 계열사에 대한 금감원 감독관 파견, 국민카드 정보유출 사건에 대한 고강도 검사, 검찰에 임 회장 고발 등 당국의 압박은 전방위로 펼쳐지고 있는 형국이다.

임 회장의 소송에 대해 금융당국은 "이사회가 책임 있는 판단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해임을 의결하지 않는 '무책임한' 행동을 할 때에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한 사외이사는 "규제업종인 금융권에서 규제권을 쥔 금융당국에 맞서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하기는 불가능하다"며 "임 회장에 대한 해임 의결을 무한정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ss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