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마치고 나오는 KB금융 계열사 사장단/연합뉴스
회의 마치고 나오는 KB금융 계열사 사장단/연합뉴스
금융위원회에서 3개월 직무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은 KB금융지주 임영록 회장에 대한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임 회장 등 임직원 4명을 검찰에 고발한 데 이어 '우군'으로 믿었던 KB금융지주 사외이사들마저 사실상의 사퇴 권고를 하면서 임 회장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카드사 정보유출 제재가 남아있는 것도 큰 부담이다.

"소송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는 임 회장의 발언으로 미뤄 끝까지 사퇴를 거부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사회가 '해임 의결'이라는 최후 수단을 쓸 수도 있어 임 회장이 결국 사퇴를 택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15일 열린 KB금융지주 이사회 긴급 간담회에서 다수의 이사는 "KB금융의 조직 안정을 위해 임 회장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사실상 자진 사퇴를 권고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자진 사퇴를 권고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이경재 KB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은 "비슷한 얘기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이사회마저 임 회장 사퇴의 불가피함을 내비친 것이다.

사외이사들은 임 회장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입을 모았다.

당국이 말하는 '범법 행위'는 말이 안 된다는 얘기였다.

A사외이사는 "국민은행의 주 전산기 교체는 임 회장이 우리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사안이었다"며 "그 과정에서 불공정하거나 부당한 결정이 없었다는 것은 누구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B사외이사는 "당국에서 범법자로 몰아가니 임 회장도 강경한 입장을 내세우는 것으로 여겨진다"며 "내가 임 회장이라고 하더라도 명예회복을 위해 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는 것이 사외이사들의 판단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임 회장이 물러나는 것이 순리라는 얘기다.

B사외이사는 "임 회장의 억울함은 이해하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에 맞서 싸울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규제업종인 금융업에서 당국에 밉보였다는 정상적인 경영이 힘들다는 것은 임 회장도 잘 알 것"이라고 지적했다.

C사외이사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KB가 안정을 되찾고 경영 정상화가 되는 것"이라며 "지금 현실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길이 임 회장의 결단으로 보여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표현을 썼다"고 설명했다.

임 회장과 관계가 돈독한 사외이사들이 '현실론'으로 돌아선 데는 KB를 향해 사방에서 조여오는 압박이 너무 크다고 느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KB금융그룹 전 계열사에 금융감독원 감독관 파견, 임 회장 등 주 전산기 교체 관련 임원 4명 검찰 고발, LIG손해보험 인수 무산 거론 등 그룹의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KB에 대한 당국의 압박은 거세지고 있다.

더구나 카드정보 유출 사건을 조사한다는 명분으로 당국이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 국민카드 등 3곳에 12명의 검사역을 투입하면서 지난 2009년의 '악몽'이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에도 이사회가 당국의 '속내'와 맞지 않은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의 회장 내정을 강행하자, 금융당국이 고강도 검사를 벌이며 압박을 가한 끝에 강 전 행장이 결국 사퇴하고 말았다.

한 금융권 인사는 "임 회장이 명예회복을 위해 사퇴를 거부한 것은 심정적으로 이해되지만, 당국과 맞서 싸워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이사회의 사퇴 권고도 나온 만큼 조만간 자진 사퇴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만약 임 회장이 사퇴를 거부한다면 이사회가 '해임 의결'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사의 직' 해임은 주주총회 결의 사항이지만, '대표이사'의 해임은 이사회 과반수의 의결로 가능하다.

한 사외이사는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 것은 임 회장이 결단을 내릴 시간을 주자는 의미이지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임 회장 측에서 반응이 없을 때에는 해임 의결이 논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는 17일에도 KB금융지주 이사회의 회동이 잡혀있는 만큼 임 회장의 사퇴 거부시 이번 주 내에 해임 의결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임 회장이 '배수진'을 친 만큼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임 회장은 직무정지를 당한 후 낸 보도자료에서 "지금 이순간부터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히기 위해서 소송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해 나갈 것"이라며 "앞으로 험난한 과정들이 예상되지만 그렇다고 대충 타협하고 말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금융권 관계자는 "임 회장이 사퇴할 생각이 있었다면 벌써 사퇴했을 것"이라며 "대표이사 해임 결의가 나오더라도 이사직은 유지할 수 있는 만큼, 사퇴를 거부하고 당국과의 행정소송에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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